사회&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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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10년 지났지만…국가 안전망은 제자리걸음?

 우리 사회에 여성 혐오와 안전에 대한 거대한 화두를 던졌던 강남역 살인사건이 10주기를 맞이했다. 지난 2016년 발생한 이 사건은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범행으로 전국적인 추모 물결과 함께 여성 안전 대책 수립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후 10년 동안 스토킹처벌법 제정과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시행 등 제도적인 보완이 이루어졌고, 도심 곳곳에는 CCTV와 안심벨 등 물리적인 방범 장치들이 촘촘하게 설치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공포의 무게는 10년 전과 비교해 크게 가벼워지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강력범죄들은 여성들의 불안이 결코 기우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광주에서 발생한 여고생 피습 사건과 남양주의 스토킹 살인 사건 등은 피해자가 위험 신호를 감지하거나 공공장소에 있었음에도 범죄의 표적이 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신당역 사건처럼 국가 시스템의 보호망 안에서도 비극을 막지 못한 사례들은 기존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여성들은 여전히 밤길을 걸을 때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택시 번호를 공유하는 등 개인적인 방어 기제에 의존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객관적인 통계 지표 역시 여성 대상 범죄의 심각성을 뒷받침한다. 최근 검찰 통계에 따르면 살인 등 강력범죄 피해자 중 여성의 비율은 무려 80%를 상회하고 있으며, 이는 강력 사건 피해자 10명 중 8명이 여성이라는 충격적인 현실을 반영한다. 또한 성평등가족부의 최신 조사 결과, 배우자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살인 및 폭력 범죄 검거 인원도 전년 대비 증가세를 보였다. 범죄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세분화해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드러난 수치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사적인 공간조차 여성들에게는 안전지대가 아님을 시사한다.

 

스토킹 범죄의 가파른 증가세는 더욱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관련 법안이 시행된 이후 통계 체계가 잡히면서 드러난 스토킹 입건 건수는 3년 연속으로 늘어나며 만 건을 훌쩍 넘어섰다. 이는 단순한 괴롭힘을 넘어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전조 현상이 우리 주변에 만연해 있음을 의미한다. 피해자들은 수사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보복 범죄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으며, 가해자를 실질적으로 격리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여성들이 체감하는 불안은 단순한 심리적 위축을 넘어 일상을 제약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젊은 여성들은 강남역 사건 이후 10년이 지났음에도 "다음 피해자는 내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쏟아지는 단기적인 대책보다는 가해자의 위험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고 즉각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근본적인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여성들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하기에 앞서, 국가가 범죄의 싹을 자르고 피해자를 확실히 보호해 줄 것이라는 신뢰를 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라는 단편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예방과 초기 대응, 사후 관리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종합적인 실행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법률 제정은 최소한의 시작일 뿐이며, 이를 집행하는 수사 및 사법 기관의 성인지 감수성 향상과 대응 역량 강화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험 신호가 감지된 시점에서 공권력이 얼마나 단호하고 신속하게 개입하느냐가 제2의 강남역 사건을 막는 핵심 열쇠가 될 전망이다. 10주기를 맞은 추모의 현장에서는 죽은 이들을 기리는 슬픔을 넘어, 실질적인 변화를 갈망하는 여성들의 절규가 계속되고 있다.

 

수만리 습지, 파괴 딛고 생태 보고로 부활

과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시킨다. 이곳은 병자호란 당시 의병을 일으켰던 백천 류함의 충절이 깃든 장소로, 탐방객들은 정자에 올라 호수를 바라보며 난세 속에서 선비가 지켰던 대의를 되새긴다. 류함이 남긴 격문 속에는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절박한 심경과 호남의 의로운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단순한 풍경 이상의 무게감을 전달한다.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무돌길 11길의 큰재는 과거와 현재의 삶이 교차하는 길목이다. 무등산 자락 깊은 곳에 위치한 이 고개는 예부터 산촌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광주와 화순을 오가던 소중한 통로였다. 해발 고도가 높은 탓에 겨울철이면 접근이 어려웠던 험로였으나, 오늘날에는 무등산 남사면의 웅장한 능선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조망점으로 변모했다. 고개 마루에서 내려다보이는 수만리 일대의 비경은 '한국의 알프스'라는 별칭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이국적이면서도 평화로운 정취를 자아낸다.큰재 아래 펼쳐진 수만리 생태공원은 인간의 손길로 빚어낸 자연의 휴식처다. 편백나무 숲과 습지원이 조화롭게 배치된 이곳은 맨발 걷기 길과 데크 산책로가 잘 갖춰져 있어 숲이 주는 치유의 힘을 온몸으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특히 빽빽하게 들어선 편백나무 군락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숲 터널을 형성하며 탐방객들에게 여유를 선사한다. 마을 주민들의 생활로였던 이 길은 이제 도시민들의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생태 관광의 핵심 기지로 자리매김했다.해발 409m에 위치한 중지마을은 무등산의 품에 가장 깊숙이 안긴 마을 중 하나다. 18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마을은 외지인 없이 고향을 지키는 주민들이 다랑이논을 일구며 살아온 삶의 터전이다. 마을 정자에서 만난 주민들은 과거 산비탈을 깎아 벼농사를 짓던 고단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길손을 반긴다. 장불재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덕분에 중지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무등산을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이자 역사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중지마을을 지나 너와나목장 방향으로 향하면 자연의 놀라운 회복력을 목격하게 된다. 과거 흑염소 방목으로 인해 황폐해졌던 산비탈은 국립공원공단의 끈질긴 복원 노력 끝에 다시 생명의 습지로 거듭났다. 2022년부터 시작된 지형 복원과 자생식물 식재 사업은 훼손된 식생을 되살렸고, 이제는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는 건강한 생태계의 보고가 되었다. 다랑이논의 흔적을 간직한 채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습지는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육장이다.초여름 햇살을 머금은 숲길은 완만한 내리막을 지나 용연마을 정자에서 그 여정을 마무리한다. 활엽수 잎사귀 사이로 불어오는 산바람은 환산정에서 시작해 큰재를 넘어온 탐방객들의 땀방울을 씻어준다. 역사 속 선비의 절개와 험준한 고개를 넘던 민초들의 삶, 그리고 파괴된 자연을 되살려낸 현대의 노력이 무돌길이라는 하나의 선 위에 촘촘히 엮여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채 다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 용연마을의 고즈넉한 풍경 속으로 잦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