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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한동훈 향해 "국민의힘서 전망 없는 '긁힌 상태'" 맹공

 조국 전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제안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관련 공개토론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조 전 위원장은 한 전 대표의 제안을 '칭얼거림'으로 규정하고, 토론에 응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조 전 위원장은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한동훈 씨의 칭얼거림에 응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으며, "한동훈 씨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사과하고, 나에게 토론하자고 징징거리는 글 쓰는 시간에 수사받을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직격했다. 이는 한 전 대표가 자신을 향해 '대장동 일당 편 전직 교수'라 칭하며 공개토론을 제안한 데 대한 강력한 반발이다.

 

앞서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대장동 일당 편 전직 교수 조국 씨, 불법 항소 포기 사태 ‘대장동 일당 편 vs 국민 편’으로 누가 맞는지 국민 앞에서 ‘야수답게’ 공개 토론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토론의 시간과 장소, 방송 출연까지 맞춰주겠다고 했으며, 오픈북이나 증인 참여도 가능하지만 위조 서류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달았다.

 

한 전 대표는 이와 함께 조 전 위원장이 최근 출연한 유튜브 채널 '삼프로TV' 영상의 섬네일을 공유했는데, 여기에는 "조국은 ‘야수’가 됐다"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문구는 이후 다른 내용으로 대체되었으나, 조 전 위원장은 이를 두고 "사실을 왜곡해 대상자를 공격하는 정치검사의 전형적 수법"이라며 한 전 대표의 행태를 비판했다.

 

조 전 위원장은 한 전 대표가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입지가 불투명한 상태라며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쓰자면 한동훈 씨가 국민의힘 내에서도 전망이 없는 상태라 ‘긁힌 상태’ 같다"고 비꼬았다.

 

조 전 위원장은 한 전 대표가 법무부 장관 시절 국회에서 이재명 대통령(당시 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설명하며 이 대표를 '대장동 사건의 최대 수혜자'이자 '대규모 비리 정점'으로 비난했던 과거를 소환했다. 그는 "1심 판결에서 사실이 부정됐다"고 지적하며, 한 전 대표의 당시 발언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더불어 조 전 위원장은 "한동훈 씨는 자신의 동지였던 강백신, 엄희준 등 ‘친윤 정치검사’들이 이 대표를 표적으로 삼는 수사를 보고받고 독려했을 것"이라며, 향후 대장동 수사 과정에서 한 전 대표의 연관성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 전 대표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수사팀의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며 공세를 강화한 것이다.

 

조 전 위원장은 대장동 관련 논란 외에도 한 전 대표의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그는 "지난해 12월 4일 계엄 해제 이후 열린 당정대 회의에서 계엄을 정당화할 논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당 콘센서스’가 마련됐다"고 주장하며, 이 회의에서 한동훈 씨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와 태도를 향후 수사에서 밝힐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 전 위원장은 공개토론에 응하는 대신, 한 전 대표에게 자신이 제기한 네 가지 요구 사항을 먼저 이행하라고 역제안했다. 그 요구 사항은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공개 사과 ▲대장동 수사와 한동훈 연관성 공개 ▲계엄 회의 발언 공개 ▲증인신문 회피 의도 해명 등이다.

 

이어 조 전 위원장은 "토론하자는 글을 쓰기 전에 수사받을 준비부터 하는 것이 좋겠다"고 거듭 압박하며, 공개토론 제안을 최종적으로 거부했다. 양측의 날 선 공방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며, 정치권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日軍이 총 쏘자 ‘피땀’ 흘렸다는 비석…방치된 이순신 최후의 보루에 가보니

던 이유는 단 하나, 수백 척의 왜군에 맞서 싸워야 할 조선 수군의 전력이 고작 13척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라도 사람을 모조리 죽여 씨를 말리라"는 잔혹한 명령 아래 전라도 전역은 초토화되고 있었고, 이순신은 함대를 보존하고 재건할 안전한 근거지가 절실했다. 법성포, 고군산도를 전전하고 우수영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폐허가 된 뒤였다. 시야 확보가 어렵고 육지와 멀어 전략적으로 부적합했던 안편도를 거쳐 마침내 도달한 곳이 바로 고하도였다. 이곳은 영산강 하구에 위치해 군량 조달이 용이하고, 북서풍을 막아주는 천혜의 지형에 배를 만들 소나무까지 풍부해 수군 재건을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고하도에 닻을 내린 이순신은 곧바로 기적과도 같은 재건 작업에 착수했다. 도착하자마자 집과 군량 창고를 짓고, 길이 1km, 높이 2m의 석성을 쌓아 방어 태세를 갖췄다. 가장 놀라운 것은 군량미 확보와 함대 증강이었다. 피란민들의 배에 실린 곡식을 군량미로 바꾸는 ‘해로통행첩’ 제도를 시행해 단 열흘 만에 1만 석의 군량미를 비축했다. 동시에 백성들을 모아 구리와 쇠로 대포를 만들고, 섬의 풍부한 소나무를 베어 40여 척의 전선을 건조했다. 그 결과 13척에 불과했던 함대는 53척으로 늘어났고, 흩어졌던 장수와 병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1천 명이던 병력은 2천 명으로 불어났다. 원균의 칠천량 패전으로 궤멸 직전까지 갔던 조선 수군이 불과 100여 일 만에 다시금 막강한 위용을 갖추게 된 것이다.오늘날 고하도는 이순신의 처절했던 재건의 역사 위에 화려한 현대적 관광 시설을 덧입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유달산 정상을 넘어서면 목포 앞바다와 해안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섬에 내리면 13척의 판옥선을 격자 모양으로 쌓아 올린 독특한 형태의 전망대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용머리 해안을 따라서는 1818m 길이의 아름다운 해상데크가 쪽빛 바다 위로 이어진다. 가을이면 해안 절벽을 수놓는 노란 들국화의 군락은 탄성을 자아낸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사진을 찍고 둘레길을 걸으며 여유를 만끽하지만, 이곳이 패배의 벼랑 끝에서 조선의 운명을 다시 일으켜 세운 역사의 심장부였음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이처럼 고하도는 아름다운 순례길 이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이지만, 그 가치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이순신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722년 세워진 기념비와 모충각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당시 수군의 심장이었던 삼도수군통제영은 복원되지 못한 채 그 터만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총을 쏘자 비석이 몇 달간 땀을 흘렸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민족의 한이 서린 곳이지만, 대부분의 방문객은 둘레길만 둘러볼 뿐 이곳을 스쳐 지나간다. 노량해전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 재기의 땅, 고하도 삼도수군통제영의 조속한 복원을 통해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모든 국민이 찾는 역사의 순례길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