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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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 호남행 두고 “기업 압박” vs “조성 행정”…정치권 전면전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구상이 정치권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부는 이를 수도권에 집중된 첨단산업 지형을 바꿀 대형 산업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야권은 대기업을 상대로 한 사실상의 투자 압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까지 직접 SNS 반박에 나서면서 논란은 산업 정책을 넘어 국정 주도권 싸움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청와대는 29일 영빈관에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열고 반도체, 피지컬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산업 육성 방안을 발표한다. 산업통상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 부처가 세부 계획을 설명하고, 삼성전자와 SK도 투자 계획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구체적인 윤곽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전체 투자 규모가 1000조 원을 웃돌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호남 반도체 구상은 처음부터 반도체 클러스터 형태로 추진된 것은 아니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애초 호남에 RE100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재생에너지 기반이 풍부한 지역 특성을 살려 기업들이 사용하는 전력을 친환경 에너지로 충당하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송전망 건설 과정에서 주민 반대가 커지고, 인공지능 산업 확산으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구상은 반도체 클러스터 쪽으로 확대됐다. 광주·전남 통합에 따른 대규모 재정 투입 가능성도 검토 배경으로 꼽힌다.

 


야권은 정부가 기업의 자율적 판단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 대통령과 대통령실 참모들을 향해 직권남용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도 삼성과 SK 총수를 불러 호남 투자를 압박하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정부가 인허가권과 규제 권한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방향을 제시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이를 거절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곧바로 맞받았다. 그는 27일부터 이틀간 X, 옛 트위터에 잇따라 글을 올려 야권 주장을 반박했다.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스스로 회사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해 투자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게 이 대통령의 설명이다. 정부가 산업 생태계를 만들고 기업 투자를 지원하는 것은 강요가 아니라 행정지도이자 조성 행정이라고도 했다.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호남의 산업용수 부족 우려에 대해서는 수자원 관리와 배치를 통해 하루 100만 톤 규모의 산업용수 공급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과 여권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단순한 지역 배분 사업으로 보지 않는다. 반도체를 경제, 안보, 청년 일자리, 지역균형발전까지 연결하는 핵심 산업으로 보고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도 반도체가 특정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반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변수라고 강조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이번 투자를 임기 중 경제 성과를 상징할 대표 사업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들의 투자 수요도 정부 논리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과 비공개로 만나 반도체 시장 상황과 투자 확대 필요성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SK 회장 역시 향후 5년 안에 웨이퍼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정부는 글로벌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에 새로운 생산 거점 확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절차 논란은 남아 있다. 야권은 공모나 공개 경쟁 없이 호남이 대규모 투자 지역으로 부상한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전력과 용수, 인력, 물류망 등 핵심 인프라 검증이 충분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반면 여권은 수도권 과밀을 완화하고 지방에 첨단산업 기반을 심기 위해 정부가 전략적 조정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맞선다.

 


이번 논란은 이 대통령의 정치적 시험대이기도 하다. 최근 지지율이 데드크로스 국면에 들어서면서, 핵심 지지 기반인 호남 민심을 안정적으로 묶어둘 필요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시에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를 묶은 메가프로젝트를 통해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도 읽힌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이제 산업 입지 논쟁을 넘어 이재명 정부의 중반 국정 운영 능력을 가늠할 대표 의제로 떠올랐다.

 

'왕사남' 열풍에 군위 엄흥도 묘소 '북적'

화본리는 최근 영화 속 주인공 엄흥도의 자취를 확인하려는 이들로 북적인다. 이곳 산108번지에 자리한 엄흥도의 묘소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면 삼족을 멸하겠다는 세조의 서슬 퍼런 엄명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왕의 마지막을 지켰던 한 충신의 절개를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영화의 기록적인 흥행은 박제된 역사 속 인물이었던 엄흥도를 우리 곁의 생생한 영웅으로 불러내며 고요했던 산골 마을을 활기 넘치는 답사지로 변모시켰다.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엄흥도 묘'를 가리키는 이정표와 함께 성역임을 알리는 홍살문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안내판에 따르면 엄흥도는 영월 호장 시절 단종의 장례를 치른 뒤 후환을 피해 군위 등지에 은거하며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러 지역에 관련 유적이 흩어져 있지만, 학계에서는 군위의 묘소가 실제 묘역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으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영화를 통해 그의 삶을 접한 관객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묘소가 아니라, 불의에 굴하지 않고 인간의 도리를 다했던 한 남자의 고결한 선택을 마주하는 성소와 같은 공간이 되었다.답사객들을 위한 군위군의 세심한 배려도 눈길을 끈다. 가파른 계단 입구에는 방문객들이 지팡이로 사용할 수 있는 나뭇가지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어 산비탈을 오르는 수고를 덜어준다. 묘역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설치된 이정표와 정비된 탐방로는 영화 흥행 이후 급증한 인파를 수용하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을 짐작하게 한다. 묘소 앞에 서서 묵념을 올리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500여 년 전 단종이 겪었을 비극과 그 곁을 지켰던 엄흥도의 고독한 결단에 대한 경외심이 묻어난다.묘소 참배를 마친 뒤 발길을 옮기면 나타나는 화본역은 답사의 또 다른 묘미를 선사한다. 철길 주변의 수려한 풍광으로 이름난 이곳은 특히 25m 높이의 급수탑이 명물로 꼽힌다. 증기기관차 시대의 유물인 급수탑 내부는 한여름에도 냉장고처럼 시원한 공기를 머금고 있어 무더위에 지친 답사객들에게 최고의 휴식처가 된다. 탑 벽면에 새겨진 '석탄 절약'이라는 옛 구호들은 관객들을 영화 속 조선 시대를 넘어 근현대사의 시간 여행으로 안내하며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군위 화본리 답사는 단순히 영화의 배경지를 둘러보는 것을 넘어 지역의 문화유산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화본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국보로 지정된 '군위 아미타여래 삼존석굴'이 자리하고 있어 역사 탐방의 깊이를 더한다. 영화 한 편이 불러일으킨 관심이 잊혔던 충신의 삶을 조명하고, 나아가 주변 관광 자원과의 연계를 통해 대구 근교의 새로운 여행 코스를 완성한 셈이다. 지도를 펼쳐 들고 다음 행선지를 확인하는 답사객들의 표정에는 영화가 남긴 여운과 새로운 발견의 설렘이 교차한다.폭염과 폭우 예보가 오가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엄흥도의 묘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던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군위의 산자락은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영화의 흥행이 지속되는 한, 단종을 향한 일편단심을 품고 숨어 살았던 엄흥도의 은거지는 시대를 초월한 충의의 상징이자 부산한 도심을 벗어난 이들의 쉼터로 더욱 사랑받을 전망이다. 군위군청이 새로 마련한 주차장에는 오늘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차량이 줄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