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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원화 절상하라” 압박에…환율 6개월 만에 최저점 ‘뚝’

 미국이 한·미 환율 협상 과정에서 한국 측에 원화 절상 방안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미국 측은 구체적인 환율 수준을 제시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양국은 환율 조정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나, 실질적 목표치 없이 원화 가치를 일정 부분 끌어올리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는 모양새다.

 

21일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은 거대한 무역적자의 근본 원인이 달러 강세에 있다고 보고 있다”며 “우리와의 협상에서도 환율의 방향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미국이 특정 환율 목표치를 요구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즉, 미국은 ‘원·달러 환율을 1300원까지 낮춰라’는 식의 직접적인 수치를 요구하지 않고, 현재 고공행진 중인 환율을 내리는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현재 미국은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관세 인상과 환율 조작 의혹을 동시에 제기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8대 비관세 부정행위 목록’에서 환율 조작을 최우선 문제로 꼽았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전 세계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주목하는 사이, 실제로는 환율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 역시 원화가 경제 펀더멘털에 비해 지나치게 절하됐다고 보고 있으나, 최근 원화 약세는 트럼프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과 미국의 인플레이션 우려 등 외부 요인에 크게 좌우되고 있어, 원화 절상 방안을 마련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21일 원·달러 환율은 미·일 등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서 환율 협상에 나선다는 소식에 전일 대비 5원 20전 하락한 1387원 20전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지난해 11월 8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수지 적자 축소를 위해 관세를 올리는 동시에 달러 가치를 낮추려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교역국에 자국 통화 대비 자국 통화 가치를 올리라고 압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관세 인상을 통해 상대국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낸 뒤, 환율 조정에서 양보를 얻어내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관세전쟁’이 지속 가능하지 않기에 결국 환율 전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관세가 모두 현실화하면 미국의 유효 관세율은 33.5%에 달한다. 이는 187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관세가 수입품 가격을 급격히 올려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미국 경제가 이러한 부담을 견디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관세 인상과 달러 절하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관세 인상은 상대국 통화 가치를 낮추고, 달러 가치를 올리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수입 수요가 감소해 상대국 통화를 매입할 필요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관세전쟁을 통해 상대국을 압박한 뒤, 환율 조정을 통해 양보를 받아왔다. 1971년 닉슨 행정부가 수입 과징금을 도입하고 금태환을 중단한 ‘닉슨쇼크’가 대표적이다. 이후 12월 스미스소니언 협정을 통해 달러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주요국 통화 가치를 절상시켰다. 2019년 미중 관세전쟁도 2020년 1단계 무역합의로 환율 문제를 봉합하며 마무리됐다.

 

 

 

한국 정부도 원화 절상을 일정 부분 바라는 분위기다. 외환 전문가들은 경제 펀더멘털에 부합하는 적정 원·달러 환율을 1300원대 중반으로 보고 있다. 현재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서 1300원대 후반으로 내려온 점을 감안하면, 추가로 30~40원가량 원화가 절상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정부가 인위적으로 원화 절상을 유도할 수단은 제한적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대외 요인, 특히 달러 강세에 크게 좌우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코로나19 이후 환율 상승 요인의 약 90%가 국내 요인이 아닌 대외 요인, 즉 달러 강세에 따른 것임을 지적했다.

 

외환시장 전문가들도 마땅한 원화 절상 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국민연금의 외화자산 매입 조정 같은 간접적 조치가 거론되지만, 실효성은 낮다. 한국은행 부총재 출신 이승헌 숭실대 교수는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분기별 공개에서 월 단위로 단축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정부가 중국의 미 국채 매도 움직임에 민감한 만큼, 우리 연기금이 미 국채 매입 카드를 활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미 양국은 환율과 통상 협상을 별도로 진행하고 있으며, 환율 양보를 통상 협상의 관세 인하 등 성과와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그러나 ‘제2의 플라자 합의’ 같은 강력한 환율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외환당국이 부인하고 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현재 외환시장 규모가 1985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 주요국이 공동 개입하더라도 환율에 큰 충격을 주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미국의 압박과 달러 강세라는 복합적 대외환경 속에서 한국 정부는 원화 절상과 무역협상 간 균형을 맞추며 어려운 협상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환율이 향후 무역 불균형 문제 해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한·미 간 협상에서 어떠한 실질적 성과가 도출될지 시장과 정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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