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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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만원 케이크가 '불티'…디저트플레이션 시대 '미친 소비' 광풍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계절이 돌아왔다. 지난해 신라호텔이 선보인 40만원대 최고가 케이크가 화제를 모았던 것처럼, 올해는 '디저트플레이션' 속에서도 더욱 화려하고 값비싼 케이크들이 주목받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초콜릿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6.3% 급등하며 16개월 연속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커피값도 가파르게 올랐고, 빵값 역시 6.6% 상승하며 베이커리 제조 원가 부담이 극심하다. 연말연시를 앞두고 초콜릿, 커피, 케이크 가격이 치솟는 디저트플레이션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러한 가격 폭등에도 불구하고 수요는 뜨겁다. 지난해 스타벅스 코리아는 조선델리와 협업한 8만9000원짜리 '노엘 트리 케이크'를 하루 만에 완판시켰다. 호텔 제과와 동일한 품질을 매장에서 픽업할 수 있다는 점이 소비자들에게 통했다.

 

호텔업계의 크리스마스 케이크 경쟁은 단순한 디저트 판매를 넘어 브랜드의 정체성과 자존심이 걸린 '브랜딩 전쟁'이다. 파라다이스호텔은 우체통 모양의 '산타 포스트 박스'를, 포시즌스호텔 서울은 트러플 초콜릿 무스를 더한 '다이아몬드 포시즌스 리프'를 선보이는 등 각 호텔은 고유한 콘셉트와 디자인으로 시그니처 케이크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호텔 파티시에들은 입체적인 트리나 오너먼트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수십 번의 테스트를 반복한다. 콘셉트 기획과 디자인에만 1~2개월, 식감과 형태를 잡는 시뮬레이션에 한 달 이상이 소요된다. 디자인이 복잡할수록 부드러운 식감을 유지하기 어렵지만, 비주얼이 곧 경쟁력인 만큼 맛과 형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재료 또한 호텔 자존심이다. 지난해 신라호텔이 40만원 케이크에 프랑스 디저트 와인 '샤토 디켐'에 숙성된 과일과 블랙 트러플을 사용했듯, 최고급 재료 사용은 필수다. 하지만 베이커리 업계는 "크리스마스 주간엔 딸기 단가가 너무 오른다"며 원재료 폭등에 비명을 지른다.

 

이 모든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완판 행진이 이어지는 이유는 '작은 사치'를 즐기려는 소비 트렌드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케이크를 사는 것이 아니라, 연말의 감성과 브랜드를 함께 구매하는 '경험 중심 소비'를 한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이제 단순한 디저트를 넘어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상징이 되었다.

 

日軍이 총 쏘자 ‘피땀’ 흘렸다는 비석…방치된 이순신 최후의 보루에 가보니

던 이유는 단 하나, 수백 척의 왜군에 맞서 싸워야 할 조선 수군의 전력이 고작 13척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라도 사람을 모조리 죽여 씨를 말리라"는 잔혹한 명령 아래 전라도 전역은 초토화되고 있었고, 이순신은 함대를 보존하고 재건할 안전한 근거지가 절실했다. 법성포, 고군산도를 전전하고 우수영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폐허가 된 뒤였다. 시야 확보가 어렵고 육지와 멀어 전략적으로 부적합했던 안편도를 거쳐 마침내 도달한 곳이 바로 고하도였다. 이곳은 영산강 하구에 위치해 군량 조달이 용이하고, 북서풍을 막아주는 천혜의 지형에 배를 만들 소나무까지 풍부해 수군 재건을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고하도에 닻을 내린 이순신은 곧바로 기적과도 같은 재건 작업에 착수했다. 도착하자마자 집과 군량 창고를 짓고, 길이 1km, 높이 2m의 석성을 쌓아 방어 태세를 갖췄다. 가장 놀라운 것은 군량미 확보와 함대 증강이었다. 피란민들의 배에 실린 곡식을 군량미로 바꾸는 ‘해로통행첩’ 제도를 시행해 단 열흘 만에 1만 석의 군량미를 비축했다. 동시에 백성들을 모아 구리와 쇠로 대포를 만들고, 섬의 풍부한 소나무를 베어 40여 척의 전선을 건조했다. 그 결과 13척에 불과했던 함대는 53척으로 늘어났고, 흩어졌던 장수와 병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1천 명이던 병력은 2천 명으로 불어났다. 원균의 칠천량 패전으로 궤멸 직전까지 갔던 조선 수군이 불과 100여 일 만에 다시금 막강한 위용을 갖추게 된 것이다.오늘날 고하도는 이순신의 처절했던 재건의 역사 위에 화려한 현대적 관광 시설을 덧입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유달산 정상을 넘어서면 목포 앞바다와 해안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섬에 내리면 13척의 판옥선을 격자 모양으로 쌓아 올린 독특한 형태의 전망대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용머리 해안을 따라서는 1818m 길이의 아름다운 해상데크가 쪽빛 바다 위로 이어진다. 가을이면 해안 절벽을 수놓는 노란 들국화의 군락은 탄성을 자아낸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사진을 찍고 둘레길을 걸으며 여유를 만끽하지만, 이곳이 패배의 벼랑 끝에서 조선의 운명을 다시 일으켜 세운 역사의 심장부였음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이처럼 고하도는 아름다운 순례길 이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이지만, 그 가치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이순신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722년 세워진 기념비와 모충각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당시 수군의 심장이었던 삼도수군통제영은 복원되지 못한 채 그 터만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총을 쏘자 비석이 몇 달간 땀을 흘렸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민족의 한이 서린 곳이지만, 대부분의 방문객은 둘레길만 둘러볼 뿐 이곳을 스쳐 지나간다. 노량해전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 재기의 땅, 고하도 삼도수군통제영의 조속한 복원을 통해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모든 국민이 찾는 역사의 순례길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