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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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 1%p 내렸더니 연체율 '쑥'… 결국 터질 수밖에 없는 은행의 고민

 은행권의 기업대출 경쟁이 과열 양상을 보이며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 금리가 주택담보대출 금리 수준에 근접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올해 3분기 중소기업 신용대출 평균금리는 4.88%로,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 평균금리인 4.12%와의 격차가 크게 좁혀졌다. 이는 지난해 4분기 5%대 후반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p 가까이 하락한 수치로, 리스크가 커 통상 높은 금리가 책정되는 신용대출의 특성을 무색하게 만드는 이례적인 상황이다.

 

이러한 금리 인하 경쟁의 배경에는 정부의 정책 기조와 은행들의 생존 전략이 맞물려 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강화하며 성장이 정체되자, 은행들은 기업금융 시장을 새로운 돌파구로 삼았다. 정부 역시 가계가 아닌 기업으로 자금이 흘러가는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며 이러한 흐름을 유도했다. 결국 한정된 시장에서 기업 고객을 선점하기 위한 은행 간의 출혈 경쟁이 심화하면서, 위험 부담을 감수하는 공격적인 금리 인하로 이어진 것이다.

 


문제는 은행들이 외형 성장에 치중하는 사이, 내부 건전성 지표에는 경고등이 켜졌다는 점이다. 올 3분기 말 기준 5대 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평균 0.42%로, 7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경기 변동에 민감한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53%까지 치솟으며 2017년 1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경기 침체 장기화로 한계에 내몰린 기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를 외면한 채 수익성 방어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당국은 최근 신용대출 증가세가 아직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시장의 우려는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금리 경쟁이 향후 부실채권 급증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기 둔화 국면이 지속될 경우, 한계 기업의 부실이 본격화되면서 은행의 건전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리스크를 감수한 은행들의 과당 경쟁이 금융 시스템 전반의 불안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日軍이 총 쏘자 ‘피땀’ 흘렸다는 비석…방치된 이순신 최후의 보루에 가보니

던 이유는 단 하나, 수백 척의 왜군에 맞서 싸워야 할 조선 수군의 전력이 고작 13척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라도 사람을 모조리 죽여 씨를 말리라"는 잔혹한 명령 아래 전라도 전역은 초토화되고 있었고, 이순신은 함대를 보존하고 재건할 안전한 근거지가 절실했다. 법성포, 고군산도를 전전하고 우수영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폐허가 된 뒤였다. 시야 확보가 어렵고 육지와 멀어 전략적으로 부적합했던 안편도를 거쳐 마침내 도달한 곳이 바로 고하도였다. 이곳은 영산강 하구에 위치해 군량 조달이 용이하고, 북서풍을 막아주는 천혜의 지형에 배를 만들 소나무까지 풍부해 수군 재건을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고하도에 닻을 내린 이순신은 곧바로 기적과도 같은 재건 작업에 착수했다. 도착하자마자 집과 군량 창고를 짓고, 길이 1km, 높이 2m의 석성을 쌓아 방어 태세를 갖췄다. 가장 놀라운 것은 군량미 확보와 함대 증강이었다. 피란민들의 배에 실린 곡식을 군량미로 바꾸는 ‘해로통행첩’ 제도를 시행해 단 열흘 만에 1만 석의 군량미를 비축했다. 동시에 백성들을 모아 구리와 쇠로 대포를 만들고, 섬의 풍부한 소나무를 베어 40여 척의 전선을 건조했다. 그 결과 13척에 불과했던 함대는 53척으로 늘어났고, 흩어졌던 장수와 병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1천 명이던 병력은 2천 명으로 불어났다. 원균의 칠천량 패전으로 궤멸 직전까지 갔던 조선 수군이 불과 100여 일 만에 다시금 막강한 위용을 갖추게 된 것이다.오늘날 고하도는 이순신의 처절했던 재건의 역사 위에 화려한 현대적 관광 시설을 덧입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유달산 정상을 넘어서면 목포 앞바다와 해안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섬에 내리면 13척의 판옥선을 격자 모양으로 쌓아 올린 독특한 형태의 전망대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용머리 해안을 따라서는 1818m 길이의 아름다운 해상데크가 쪽빛 바다 위로 이어진다. 가을이면 해안 절벽을 수놓는 노란 들국화의 군락은 탄성을 자아낸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사진을 찍고 둘레길을 걸으며 여유를 만끽하지만, 이곳이 패배의 벼랑 끝에서 조선의 운명을 다시 일으켜 세운 역사의 심장부였음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이처럼 고하도는 아름다운 순례길 이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이지만, 그 가치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이순신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722년 세워진 기념비와 모충각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당시 수군의 심장이었던 삼도수군통제영은 복원되지 못한 채 그 터만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총을 쏘자 비석이 몇 달간 땀을 흘렸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민족의 한이 서린 곳이지만, 대부분의 방문객은 둘레길만 둘러볼 뿐 이곳을 스쳐 지나간다. 노량해전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 재기의 땅, 고하도 삼도수군통제영의 조속한 복원을 통해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모든 국민이 찾는 역사의 순례길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