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post

경제post

빼빼로데이가 2000억 '굿즈 결제 수단'이 된 비결

 11월 11일, 이 하루에 집중되는 국내 제과 시장의 매출 폭발력은 여전히 놀랍다. 일명 '빼빼로데이'로 불리는 이 기념일은 단순한 막대과자 판매를 넘어, 이제는 K-콘텐츠, 캐릭터 IP(지적재산권), 그리고 팬덤 경제가 격돌하는 연례 마케팅 전쟁터로 진화했다. 30년 전 부산의 한 여고에서 시작된 작은 유행은 어떻게 2000억 원 규모의 '굿즈 플랫폼'으로 변모했을까.

 

빼빼로데이는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처럼 해외에서 유입된 기념일이 아니다. 1990년대 초, '1이 네 번 겹치는 날 날씬해지자'는 학생들의 덕담에서 비롯된 '자생적 기념일'이라는 점이 이 마케팅의 가장 강력한 레거시(Legacy)다.

 

제조사 롯데웰푸드는 이 우연한 바이럴 현상을 놓치지 않고, 1990년대 중반부터 대대적인 캠페인을 통해 11월 11일을 공식화했다. 이는 단순한 프로모션이 아니라, 소비자의 자발적인 '참여'와 '관계'라는 무형의 가치를 과자에 투영하는 데 성공한 사례다. 가격이 4배 이상 뛰어도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이유는, 과자 자체가 아니라 그 과자를 통해 전달되는 '관계 확인'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빼빼로데이 마케팅의 가장 큰 변화는 '제품 중심'에서 '콘텐츠 및 경험 중심'으로의 피벗이다. 과거 1+1 할인이나 대형 포장 중심이었던 판촉 전략은 이제 캐릭터 IP와 K팝 팬덤을 끌어들이는 '굿즈 경제' 모델로 완전히 전환되었다.

 


2024년 빼빼로데이는 이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롯데웰푸드는 글로벌 앰배서더인 K팝 그룹 스트레이 키즈를 활용한 한정판 굿즈를 전면에 내세웠고, 버추얼 아이돌 '이세계아이돌', 어린이 콘텐츠 '캐치! 티니핑' 등 이질적인 IP들과도 협업했다.

 

핵심은 "빼빼로를 사면 굿즈를 준다"가 아니라, "굿즈를 얻기 위해 빼빼로를 산다"는 역전 현상이다. 소비자는 더 이상 2000원짜리 과자를 사는 것이 아니라, 3만 원 이상을 결제하고 희소성 있는 팬덤 굿즈나 한정판 캐릭터 상품을 획득하는 '경험'에 투자하는 것이다. 빼빼로는 이제 콘텐츠 플랫폼의 '결제 수단'이자 '매개체'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전략적 변화는 결국 소비자가 단순한 막대과자가 아닌, '프리미엄 굿즈를 얻기 위한 매개체'로서 빼빼로를 구매하게 만드는 새로운 소비 심리를 창출했다. 이제 소비자는 과자 자체의 원가 대신, 한정판 굿즈가 주는 '희소성'과 특정 IP를 소유함으로써 얻는 '팬덤 참여의 가치'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11월 11일은 제과업계의 연례행사를 넘어, K-콘텐츠와 팬덤 경제가 결합된 '기간 한정 팝업 스토어'로 진화하며, 한국 소비 문화의 역동성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맥도날드 저격'하며 태어난 그 운동, 미국 한복판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다

임의 중심에 미국 캘리포니아의 주도, 새크라멘토가 떠오르고 있다. ‘성스러운 강’이라는 이름의 이 도시는 ‘팜 투 포크(Farm-to-Fork, 농장에서 식탁까지)’라는 슬로건을 도시의 정체성으로 내걸었다. 1986년 이탈리아에서 맥도날드에 대항하며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의 정신을 미국 서부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그 결과는 놀라워서, 슬로푸드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테라 마드레(어머니의 땅)’ 축제가 사상 처음으로 이탈리아 밖인 바로 이곳 새크라멘토에서 열리는 영광으로 이어졌다. 이는 새크라멘토가 단순한 미식 도시를 넘어, 패스트푸드로 상징되는 현대 문명에 맞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세계적인 구심점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다.새크라멘토가 이처럼 ‘미국의 팜 투 포크 수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1852년의 대홍수가 시에라산맥의 비옥한 퇴적물을 센트럴밸리 전역으로 실어 날랐고, 새크라멘토강과 아메리카강이 만나는 풍부한 수량, 강렬한 햇살과 서늘한 저녁 기후가 더해져 농사를 위한 최적의 땅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도시 반경 100km 안에서 거의 모든 식자재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요리사의 천국’이 탄생했다. 전 세계 아몬드 생산량의 90% 이상, 세계 3대 자포니카 쌀 생산지, 미국 최대 캐비어 양식장이 이곳에 있으며, 토마토, 올리브, 와인 등도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이다. 파머스마켓에 들어서는 순간, 숯불 위에서 구워지는 패티와 갓 구운 빵, 신선한 농작물이 뒤섞여 뿜어내는 풍요로운 향기는 이 도시가 가진 땅의 힘을 오감으로 느끼게 한다.이처럼 거대한 농지가 세계적인 미식 도시로 탈바꿈한 데에는 몇몇 선구자들의 ‘가벼운 우연’과 ‘열정적인 모험’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이민 2세대 농부였던 레이 융이 우연히 얻은 둥근 토마토 씨앗을 심었다가 밭 전체를 뒤덮자, 처리를 위해 현지 레스토랑에 직접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 ‘팜(농장)’에서 ‘포크(식탁)’로 이어지는 직거래 문화의 시초가 되었다. 여기에 ‘요리계의 인디애나 존스’로 불린 식료품점 아들 대릴 코르티가 가세했다. 그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누비며 당시 미국에는 생소했던 파르메산 치즈, 트러플, 발사믹 식초 등을 들여와 새크라멘토의 식탁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이들의 노력이 씨앗이 되어 2012년, 케빈 존슨 전 시장은 새크라멘토를 ‘미국 팜 투 포크 운동의 수도’로 공식 선언하기에 이르렀다.새크라멘토의 철학은 결국 ‘시간의 회복’으로 귀결된다. 세계적인 셰프 엘리자베스 포크너는 테라 마드레 행사에서 “내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패스트푸드”라며, 아이들의 ‘인앤아웃 햄버거’ 타령에 씁쓸해했다. 그녀에게 패스트푸드와의 싸움은 곧 자신의 요리를 지속하게 하는 동력이다. 포크너는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현지 농부와 어부를 직접 만나 제철 식재료를 확인하는 것을 요리의 첫걸음으로 삼는다. 이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기술을 넘어, 생산자와의 관계를 맺고 자연의 리듬을 존중하는 슬로푸드의 핵심 가치와 맞닿아 있다. 멕시코계, 아프가니스탄계 이민자들이 기른 작물이 스페인 음식에 매료된 요리사의 손에서 파에야로 재탄생하는 새크라멘토의 식탁은, 결국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촘촘히 엮여 만들어내는 ‘인간적인 시간’ 그 자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