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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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海苔)까지 세계 표준화…K-푸드가 국제 규격까지 접수

 우리 전통 음식인 김치가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세계 규격을 다시 인정받으면서, 한국이 ‘김치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다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열린 제48차 코덱스 총회에서 김치를 비롯한 여러 전통 농수산식품 관련 국제 표준이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다고 전했다. 코덱스는 188개국이 참여해 식품 안전과 국제 교역 기준을 만드는 세계식량농업기구(FAO)·세계보건기구(WHO) 산하의 공동 기구로, 여기서 인정받는 규격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식품 기준으로 작용한다. 이번 총회는 2001년 제정된 김치 규격을 20여 년 만에 손질한 자리이기도 했다.

 

그동안 김치의 주원료는 국제 규격에서 ‘차이니즈 캐비지(Chinese cabbage)’ 한 종류만 등록돼 있어 한국 입장에서는 김치가 마치 중국 채소를 원료로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는 과학 문헌과 국제 교역 현장에서 이미 ‘김치 캐비지(kimchi cabbage)’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며 규격 개정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 이번 총회에서 김치 캐비지가 새롭게 등재됐고, 동시에 ‘나파 캐비지(Napa cabbage)’도 함께 포함되면서 김치의 주원료 명칭이 실제 소비·생산 현실을 반영한 형태로 재정비됐다. 이 과정은 한국이 김치의 기원과 정통성을 국제 기준으로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이번 총회에서는 우리나라가 제안한 ‘김(Gim)’ 제품의 세계 규격 작업이 공식 승인됐다. 지금까지 김 제품은 아시아 지역 규격에만 포함돼 있었지만, 앞으로는 마른김, 구운김, 조미김 등 3종류를 세계 규격으로 전환하기 위한 구체적 논의가 시작된다. 인삼 제품과 고추장이 과거 지역 규격에서 세계 규격으로 올라선 전례가 있는 만큼, 김 산업도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정부는 김의 품질 기준과 위생 규정, 표시사항, 시험법 등이 국제적으로 통일되면 수출 대상국의 까다로운 요구를 일일이 충족해야 하는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수출 규모가 이미 연간 10억 달러를 바라보고 있는 만큼, 이번 규격화 추진은 산업 확장에 직접적인 긍정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이번 총회에서 과일·채소 가공 제품 규격을 다루는 코덱스 가공과채류분과의 의장국으로 선출됐다. 식약처가 앞으로 해당 분과를 이끌게 되면서 김치, 고추장, 인삼 제품 등 한국 대표 식품들의 국제 규격 운영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의장국 역할은 국제 논의 구조를 설계하고 기준 마련 방향을 조율하는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한국 식품 산업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여기에 고구마, 밤, 감 등 아시아권에서 많이 소비되는 품목의 국제 기준 설정 논의에도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서, 한국 농수산물의 세계 표준화 작업은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맥도날드 저격'하며 태어난 그 운동, 미국 한복판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다

임의 중심에 미국 캘리포니아의 주도, 새크라멘토가 떠오르고 있다. ‘성스러운 강’이라는 이름의 이 도시는 ‘팜 투 포크(Farm-to-Fork, 농장에서 식탁까지)’라는 슬로건을 도시의 정체성으로 내걸었다. 1986년 이탈리아에서 맥도날드에 대항하며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의 정신을 미국 서부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그 결과는 놀라워서, 슬로푸드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테라 마드레(어머니의 땅)’ 축제가 사상 처음으로 이탈리아 밖인 바로 이곳 새크라멘토에서 열리는 영광으로 이어졌다. 이는 새크라멘토가 단순한 미식 도시를 넘어, 패스트푸드로 상징되는 현대 문명에 맞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세계적인 구심점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다.새크라멘토가 이처럼 ‘미국의 팜 투 포크 수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1852년의 대홍수가 시에라산맥의 비옥한 퇴적물을 센트럴밸리 전역으로 실어 날랐고, 새크라멘토강과 아메리카강이 만나는 풍부한 수량, 강렬한 햇살과 서늘한 저녁 기후가 더해져 농사를 위한 최적의 땅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도시 반경 100km 안에서 거의 모든 식자재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요리사의 천국’이 탄생했다. 전 세계 아몬드 생산량의 90% 이상, 세계 3대 자포니카 쌀 생산지, 미국 최대 캐비어 양식장이 이곳에 있으며, 토마토, 올리브, 와인 등도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이다. 파머스마켓에 들어서는 순간, 숯불 위에서 구워지는 패티와 갓 구운 빵, 신선한 농작물이 뒤섞여 뿜어내는 풍요로운 향기는 이 도시가 가진 땅의 힘을 오감으로 느끼게 한다.이처럼 거대한 농지가 세계적인 미식 도시로 탈바꿈한 데에는 몇몇 선구자들의 ‘가벼운 우연’과 ‘열정적인 모험’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이민 2세대 농부였던 레이 융이 우연히 얻은 둥근 토마토 씨앗을 심었다가 밭 전체를 뒤덮자, 처리를 위해 현지 레스토랑에 직접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 ‘팜(농장)’에서 ‘포크(식탁)’로 이어지는 직거래 문화의 시초가 되었다. 여기에 ‘요리계의 인디애나 존스’로 불린 식료품점 아들 대릴 코르티가 가세했다. 그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누비며 당시 미국에는 생소했던 파르메산 치즈, 트러플, 발사믹 식초 등을 들여와 새크라멘토의 식탁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이들의 노력이 씨앗이 되어 2012년, 케빈 존슨 전 시장은 새크라멘토를 ‘미국 팜 투 포크 운동의 수도’로 공식 선언하기에 이르렀다.새크라멘토의 철학은 결국 ‘시간의 회복’으로 귀결된다. 세계적인 셰프 엘리자베스 포크너는 테라 마드레 행사에서 “내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패스트푸드”라며, 아이들의 ‘인앤아웃 햄버거’ 타령에 씁쓸해했다. 그녀에게 패스트푸드와의 싸움은 곧 자신의 요리를 지속하게 하는 동력이다. 포크너는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현지 농부와 어부를 직접 만나 제철 식재료를 확인하는 것을 요리의 첫걸음으로 삼는다. 이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기술을 넘어, 생산자와의 관계를 맺고 자연의 리듬을 존중하는 슬로푸드의 핵심 가치와 맞닿아 있다. 멕시코계, 아프가니스탄계 이민자들이 기른 작물이 스페인 음식에 매료된 요리사의 손에서 파에야로 재탄생하는 새크라멘토의 식탁은, 결국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촘촘히 엮여 만들어내는 ‘인간적인 시간’ 그 자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