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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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가 손질 과일 전쟁, '시성비'가 승패 가른다

 여름철 대표 과일인 수박은 달콤한 맛과는 달리 거대한 크기와 산더미처럼 쌓이는 껍질 쓰레기 때문에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고충을 파고든 유통업계의 '손질 과일' 경쟁이 올여름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과일을 깎고 자르는 수고를 덜어주는 것은 물론, 원하는 형태로 즉석에서 손질해 주는 맞춤형 서비스까지 등장하며 편의성을 극대화한 상품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실제로 롯데마트의 지난달 조각 수박 판매량은 작년보다 70% 이상 급증했으며, 멜론과 감귤 등 컷팅 과일 전반의 매출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커머스 시장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SSG닷컴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달 간편 과일 카테고리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 신장하며 여름철 효자 품목으로 자리매김했다. 1~2인 가구가 보편화되면서 대용량 과일을 한꺼번에 소비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 데다, 무더위 속에서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조각 과일로 눈을 돌린 결과다. 이제 소비자들은 수박 한 통을 통째로 사는 대신, 한 끼에 먹기 적당한 양으로 소분된 팩 제품을 선택하며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하고 있다.

 


창고형 할인점인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최근 '껍질 없는 반통 수박'을 재출시하며 차별화에 나섰다. 이 상품은 수박을 반으로 잘라 껍질만 말끔히 제거한 뒤 전용 용기에 담아 판매하는 방식으로, 신선도는 유지하면서도 껍질 쓰레기는 전혀 발생하지 않게 설계됐다.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손질이 까다로운 파인애플이나 멜론, 키위 등을 먹기 좋게 자른 '후레쉬 컷' 상품들이 매출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유통업계는 단순히 과일을 자르는 수준을 넘어, 선도에 불만이 있을 경우 조건 없이 환불해 주는 신선보장제도를 도입하며 품질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백화점 업계는 한 발 더 나아가 개인 맞춤형 손질 서비스를 선보이며 프리미엄 수요를 공략 중이다. 현대백화점 식품관에서 운영하는 '프레시 테이블'은 고객이 구매한 과일이나 채소를 현장에서 즉시 세척하고 원하는 모양으로 깎아주는 유료 서비스다. 깍둑썰기부터 채썰기, 다지기까지 용도에 맞는 손질이 가능해 요리 시간을 단축하려는 직장인과 고령층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환경 보호를 위해 일회용 플라스틱 대신 다회용기를 지참하거나 전용 용기를 구매해야 이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젊은 층의 지지까지 끌어냈다.

 


롯데마트와 슈퍼 역시 조각 과일 품목을 대폭 확대하며 선택의 폭을 넓혔다. 수박을 2분의 1 또는 4분의 1 크기로 소분하는 것은 기본이고, 사과와 오렌지, 자몽 등 다양한 과일을 200g부터 800g까지 세분화된 용량으로 판매한다. 특히 두 가지 이상의 과일을 한 통에 담은 혼합 도시락 형태의 제품은 여러 과일을 조금씩 맛보고 싶어 하는 소용량 소비층의 니즈를 정확히 관통했다. 유통업계는 이러한 조각 과일이 단순히 편의를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 시간 절약과 쓰레기 감소라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식문화로 정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손질 과일 시장의 성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물가 시대에 과일 가격이 급등하면서 필요한 만큼만 구매해 버려지는 양을 줄이려는 경제적 동기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유통사들은 신선도 유지 기술을 고도화하고 품목을 더욱 다양화해 여름뿐만 아니라 사계절 내내 간편하게 과일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껍질을 깎는 번거로움이 사라진 자리에 편리함과 효율성이 채워지면서, 손질 과일은 이제 여름철 장바구니의 필수 아이템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왕사남' 열풍에 군위 엄흥도 묘소 '북적'

화본리는 최근 영화 속 주인공 엄흥도의 자취를 확인하려는 이들로 북적인다. 이곳 산108번지에 자리한 엄흥도의 묘소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면 삼족을 멸하겠다는 세조의 서슬 퍼런 엄명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왕의 마지막을 지켰던 한 충신의 절개를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영화의 기록적인 흥행은 박제된 역사 속 인물이었던 엄흥도를 우리 곁의 생생한 영웅으로 불러내며 고요했던 산골 마을을 활기 넘치는 답사지로 변모시켰다.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엄흥도 묘'를 가리키는 이정표와 함께 성역임을 알리는 홍살문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안내판에 따르면 엄흥도는 영월 호장 시절 단종의 장례를 치른 뒤 후환을 피해 군위 등지에 은거하며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러 지역에 관련 유적이 흩어져 있지만, 학계에서는 군위의 묘소가 실제 묘역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으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영화를 통해 그의 삶을 접한 관객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묘소가 아니라, 불의에 굴하지 않고 인간의 도리를 다했던 한 남자의 고결한 선택을 마주하는 성소와 같은 공간이 되었다.답사객들을 위한 군위군의 세심한 배려도 눈길을 끈다. 가파른 계단 입구에는 방문객들이 지팡이로 사용할 수 있는 나뭇가지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어 산비탈을 오르는 수고를 덜어준다. 묘역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설치된 이정표와 정비된 탐방로는 영화 흥행 이후 급증한 인파를 수용하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을 짐작하게 한다. 묘소 앞에 서서 묵념을 올리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500여 년 전 단종이 겪었을 비극과 그 곁을 지켰던 엄흥도의 고독한 결단에 대한 경외심이 묻어난다.묘소 참배를 마친 뒤 발길을 옮기면 나타나는 화본역은 답사의 또 다른 묘미를 선사한다. 철길 주변의 수려한 풍광으로 이름난 이곳은 특히 25m 높이의 급수탑이 명물로 꼽힌다. 증기기관차 시대의 유물인 급수탑 내부는 한여름에도 냉장고처럼 시원한 공기를 머금고 있어 무더위에 지친 답사객들에게 최고의 휴식처가 된다. 탑 벽면에 새겨진 '석탄 절약'이라는 옛 구호들은 관객들을 영화 속 조선 시대를 넘어 근현대사의 시간 여행으로 안내하며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군위 화본리 답사는 단순히 영화의 배경지를 둘러보는 것을 넘어 지역의 문화유산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화본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국보로 지정된 '군위 아미타여래 삼존석굴'이 자리하고 있어 역사 탐방의 깊이를 더한다. 영화 한 편이 불러일으킨 관심이 잊혔던 충신의 삶을 조명하고, 나아가 주변 관광 자원과의 연계를 통해 대구 근교의 새로운 여행 코스를 완성한 셈이다. 지도를 펼쳐 들고 다음 행선지를 확인하는 답사객들의 표정에는 영화가 남긴 여운과 새로운 발견의 설렘이 교차한다.폭염과 폭우 예보가 오가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엄흥도의 묘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던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군위의 산자락은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영화의 흥행이 지속되는 한, 단종을 향한 일편단심을 품고 숨어 살았던 엄흥도의 은거지는 시대를 초월한 충의의 상징이자 부산한 도심을 벗어난 이들의 쉼터로 더욱 사랑받을 전망이다. 군위군청이 새로 마련한 주차장에는 오늘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차량이 줄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