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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탕후루 그만 좀' 악플에…초등학생 가수 서이브가 보인 의외의 반응

 가수 서이브가 '마라탕후루'의 신드롬급 인기에 대한 소회와 그 이면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지난해 발매된 '마라탕후루'는 공개 4일 만에 조회수 100만을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수많은 크리에이터와 또래 친구들이 챌린지 열풍에 동참하면서 서이브는 갑작스러운 유명세를 실감했다. 그녀는 팬들이 생기고 팔로워가 늘어나는 상황이 신기하고 좋았다며, 이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2017년부터 크리에이터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이 곡의 히트로 만 11세라는 최연소 나이에 지상파 음악방송 무대에 서는 등 전례 없는 기록을 쓰기도 했다.

 

폭발적인 인기 뒤에는 그림자도 따랐다. "언제까지 마라탕후루를 우려먹을 것이냐", "알고리즘에 그만 좀 떠라"와 같은 악성 댓글이 쏟아진 것이다. 하지만 서이브는 이러한 부정적인 반응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정신력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의 반증으로 여기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에 부담감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당당히 말했다. 음원 수익과 같은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부모님이 관리해주신다고 밝혔다. 부모님이 그녀의 이름으로 따로 통장을 개설했으며, 활동으로 번 돈은 모두 그곳에 모아두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 통장은 만 19세가 넘어야만 열 수 있는 특별한 통장이라고 덧붙였다.

 


'마라탕후루'의 인기는 국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최근 공개된 'Say yes'의 '마라탕후루' 버전은 캄보디아와 대만 등 해외 음원 차트 순위권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대만에서는 원곡의 인기가 상당했기에 현지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서이브는 대만 배우 겸 뮤지션인 이옥새(Dino Lee)와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진행했으며, 그가 직접 서이브를 위한 곡을 만들어주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 인연을 계기로 대만에 머물며 현지 인터뷰, 라디오, 예능 방송 등 다양한 프로모션 활동을 소화하며 글로벌 팬들과 만났다.

 

이러한 활동의 원동력은 그녀의 확고한 의지와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다. 모델 출신 방송인 이파니의 딸이기도 한 서이브는 부모님이 매니저처럼 모든 스케줄에 동행하며 헌신적으로 돕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그녀가 힘들어 보일 때면 쉬어도 된다고 걱정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 일이 너무 좋아서 멈출 수 없다며 강한 열정을 드러냈다. 앞으로도 모두가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그녀는, 각 나라에서 최선을 다하는 만큼 많은 사랑을 부탁하며 더욱 멋진 모습으로 성장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日軍이 총 쏘자 ‘피땀’ 흘렸다는 비석…방치된 이순신 최후의 보루에 가보니

던 이유는 단 하나, 수백 척의 왜군에 맞서 싸워야 할 조선 수군의 전력이 고작 13척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라도 사람을 모조리 죽여 씨를 말리라"는 잔혹한 명령 아래 전라도 전역은 초토화되고 있었고, 이순신은 함대를 보존하고 재건할 안전한 근거지가 절실했다. 법성포, 고군산도를 전전하고 우수영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폐허가 된 뒤였다. 시야 확보가 어렵고 육지와 멀어 전략적으로 부적합했던 안편도를 거쳐 마침내 도달한 곳이 바로 고하도였다. 이곳은 영산강 하구에 위치해 군량 조달이 용이하고, 북서풍을 막아주는 천혜의 지형에 배를 만들 소나무까지 풍부해 수군 재건을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고하도에 닻을 내린 이순신은 곧바로 기적과도 같은 재건 작업에 착수했다. 도착하자마자 집과 군량 창고를 짓고, 길이 1km, 높이 2m의 석성을 쌓아 방어 태세를 갖췄다. 가장 놀라운 것은 군량미 확보와 함대 증강이었다. 피란민들의 배에 실린 곡식을 군량미로 바꾸는 ‘해로통행첩’ 제도를 시행해 단 열흘 만에 1만 석의 군량미를 비축했다. 동시에 백성들을 모아 구리와 쇠로 대포를 만들고, 섬의 풍부한 소나무를 베어 40여 척의 전선을 건조했다. 그 결과 13척에 불과했던 함대는 53척으로 늘어났고, 흩어졌던 장수와 병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1천 명이던 병력은 2천 명으로 불어났다. 원균의 칠천량 패전으로 궤멸 직전까지 갔던 조선 수군이 불과 100여 일 만에 다시금 막강한 위용을 갖추게 된 것이다.오늘날 고하도는 이순신의 처절했던 재건의 역사 위에 화려한 현대적 관광 시설을 덧입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유달산 정상을 넘어서면 목포 앞바다와 해안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섬에 내리면 13척의 판옥선을 격자 모양으로 쌓아 올린 독특한 형태의 전망대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용머리 해안을 따라서는 1818m 길이의 아름다운 해상데크가 쪽빛 바다 위로 이어진다. 가을이면 해안 절벽을 수놓는 노란 들국화의 군락은 탄성을 자아낸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사진을 찍고 둘레길을 걸으며 여유를 만끽하지만, 이곳이 패배의 벼랑 끝에서 조선의 운명을 다시 일으켜 세운 역사의 심장부였음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이처럼 고하도는 아름다운 순례길 이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이지만, 그 가치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이순신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722년 세워진 기념비와 모충각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당시 수군의 심장이었던 삼도수군통제영은 복원되지 못한 채 그 터만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총을 쏘자 비석이 몇 달간 땀을 흘렸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민족의 한이 서린 곳이지만, 대부분의 방문객은 둘레길만 둘러볼 뿐 이곳을 스쳐 지나간다. 노량해전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 재기의 땅, 고하도 삼도수군통제영의 조속한 복원을 통해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모든 국민이 찾는 역사의 순례길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