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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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소멸 해법, 주요 기업 본사 지방 이전에 있다

 대한민국이 마주한 가장 위협적인 재난은 인구 감소를 넘어선 국토의 비대칭적 붕괴, 즉 지역 소멸이다. 그간 수많은 예산이 투입되었음에도 지방의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된 배경에는 공간이 권력화되는 자본주의의 생리를 간과한 정책적 실책이 자리 잡고 있다. 자본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기획과 연구개발 등 핵심 기능을 수도권에 집중시키고, 단순 실행 기능만을 지방으로 내몰며 공간적 분업 체계를 고착화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지방은 부가가치를 생성하고도 이를 수도권에 빼앗기는 수동적인 하청 기지로 전락하며 자생력을 잃어갔다.

 

지리적 위치가 곧 계급이 되는 현실은 노동시장의 극심한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현재 국내 주요 기업 본사와 연구 인력의 70% 이상이 수도권에 밀집해 있으며, 이는 단지 수도권에 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누리는 '공간 프리미엄'을 형성했다. 반면 지방 노동자들은 동일한 역량을 갖추고도 공간에 결박되었다는 이유로 임금 페널티와 차별적 대우를 감내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위계는 청년들이 생존을 위해 고향을 등지고 수도권으로 향하게 만드는 거대한 압력으로 작용하며 지역의 미래를 갉아먹는 중이다.

 


특히 한국의 성장을 견인해 온 주요 산업도시들의 붕괴는 청년 엑소더스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울산과 포항 등 대표적인 제조 거점 도시들에서 지난 10년간 유출된 인구의 대다수는 10대와 20대 세대였다. 기업들이 우수 인재 확보를 명분으로 핵심 직군을 수도권 본사로 이전시키면서, 지방에는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지역 내 총생산이 높은 도시조차 청년 실업률이 치솟는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했으며, 공간 권력을 상실한 청년들은 수도권 이주를 강요받는 구조적 약자가 되었다.

 

이러한 절망적인 흐름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의 거점 자체를 지방으로 옮기는 '지역본사제'의 전면적인 도입이 시급하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건물을 이전하는 수준을 넘어, 경영 의사 결정권과 혁신 역량이라는 실질적인 권력을 지방에 이식하는 과정이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처럼 본사를 낙후 지역으로 옮기는 기업에 파격적인 법인세 감면 혜택을 제공하는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서울에는 최소한의 거점만 남기고 지방에 인사와 재무권을 부여한 제2본사를 세우는 복수본사제 역시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 꼽힌다.

 


자본의 이동과 더불어 노동 환경의 획기적인 변화도 병행되어야 한다. 주 4일제와 같은 노동시간 단축은 지방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비수도권의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기후 위기 시대에 대응하는 산업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자유 시간을 보장함으로써,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수도권과는 차별화된 '생태적이고 여유로운 삶'의 모델을 지방에서 구현해야 한다. 이러한 삶의 질적 전환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청년들이 지역에 머물며 미래를 설계할 동기를 얻게 된다.

 

결국 지역 소멸 대응의 핵심은 공간적 정의를 실현하는 정치적 결단에 있다. 자본의 수도권 독식을 방치한 채 도로를 닦고 건물을 짓는 방식으로는 지방의 고속 탈출로만 넓혀줄 뿐이다. 권력을 지리적으로 분산하는 지역본사제와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노동시간 단축이 결합할 때 대한민국 국토는 균형 있는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다. 자본과 노동, 그리고 공간이 상생하는 새로운 사회적 기획을 통해 전국이 고르게 발전하는 진정한 균형발전 시대를 열어야 한다.

 

 

 

수만리 습지, 파괴 딛고 생태 보고로 부활

과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시킨다. 이곳은 병자호란 당시 의병을 일으켰던 백천 류함의 충절이 깃든 장소로, 탐방객들은 정자에 올라 호수를 바라보며 난세 속에서 선비가 지켰던 대의를 되새긴다. 류함이 남긴 격문 속에는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절박한 심경과 호남의 의로운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단순한 풍경 이상의 무게감을 전달한다.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무돌길 11길의 큰재는 과거와 현재의 삶이 교차하는 길목이다. 무등산 자락 깊은 곳에 위치한 이 고개는 예부터 산촌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광주와 화순을 오가던 소중한 통로였다. 해발 고도가 높은 탓에 겨울철이면 접근이 어려웠던 험로였으나, 오늘날에는 무등산 남사면의 웅장한 능선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조망점으로 변모했다. 고개 마루에서 내려다보이는 수만리 일대의 비경은 '한국의 알프스'라는 별칭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이국적이면서도 평화로운 정취를 자아낸다.큰재 아래 펼쳐진 수만리 생태공원은 인간의 손길로 빚어낸 자연의 휴식처다. 편백나무 숲과 습지원이 조화롭게 배치된 이곳은 맨발 걷기 길과 데크 산책로가 잘 갖춰져 있어 숲이 주는 치유의 힘을 온몸으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특히 빽빽하게 들어선 편백나무 군락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숲 터널을 형성하며 탐방객들에게 여유를 선사한다. 마을 주민들의 생활로였던 이 길은 이제 도시민들의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생태 관광의 핵심 기지로 자리매김했다.해발 409m에 위치한 중지마을은 무등산의 품에 가장 깊숙이 안긴 마을 중 하나다. 18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마을은 외지인 없이 고향을 지키는 주민들이 다랑이논을 일구며 살아온 삶의 터전이다. 마을 정자에서 만난 주민들은 과거 산비탈을 깎아 벼농사를 짓던 고단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길손을 반긴다. 장불재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덕분에 중지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무등산을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이자 역사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중지마을을 지나 너와나목장 방향으로 향하면 자연의 놀라운 회복력을 목격하게 된다. 과거 흑염소 방목으로 인해 황폐해졌던 산비탈은 국립공원공단의 끈질긴 복원 노력 끝에 다시 생명의 습지로 거듭났다. 2022년부터 시작된 지형 복원과 자생식물 식재 사업은 훼손된 식생을 되살렸고, 이제는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는 건강한 생태계의 보고가 되었다. 다랑이논의 흔적을 간직한 채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습지는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육장이다.초여름 햇살을 머금은 숲길은 완만한 내리막을 지나 용연마을 정자에서 그 여정을 마무리한다. 활엽수 잎사귀 사이로 불어오는 산바람은 환산정에서 시작해 큰재를 넘어온 탐방객들의 땀방울을 씻어준다. 역사 속 선비의 절개와 험준한 고개를 넘던 민초들의 삶, 그리고 파괴된 자연을 되살려낸 현대의 노력이 무돌길이라는 하나의 선 위에 촘촘히 엮여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채 다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 용연마을의 고즈넉한 풍경 속으로 잦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