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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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암고 이어 배재고까지…고교야구 '혐오' 몸살

 고교야구 대회 도중 광주 지역과 역사적 사건을 조롱하는 부적절한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을 일으킨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원들이 교육 당국의 본격적인 조사를 받게 됐다. 서울시교육청은 30일 이번 사태에 대한 엄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담당 장학사를 배재고에 파견해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기로 했다. 교육청은 현장에서 지도교사의 제지가 있었는지와 학생 선수들에 대한 평소 교육 과정을 면밀히 점검할 예정이며, 상처를 입은 광주일고 선수단과 광주 시민들을 향해 공식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번 파문은 전날 목동구장에서 열린 청룡기 전국 고교야구대회 경기 중 배재고 일부 선수들이 상대 팀인 광주일고 더그아웃을 향해 특정 기업의 명칭과 함께 역사적 비극을 연상시키는 구호를 외치며 시작됐다. 이들은 지난달 논란이 되었던 마케팅 문구를 인용해 "탱크 데이"라고 소리치는 등 5·18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응원을 넘어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정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현장을 지켜보던 관중들과 야구 관계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광주일고 측은 경기 도중 즉각 심판진에 항의하며 불쾌감을 표시했고, 배재고 측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공식 사과문을 올렸다. 학교 측은 해당 학생들을 생활교육위원회에 회부해 학칙에 따라 엄벌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광주일고 선수를 사칭한 가짜 사과문까지 유포되면서 2차 가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광주일고 감독은 선수 명의의 글이 본인 계정이 아닌 사칭에 의한 것이라고 확인하며 추가적인 피해 방지를 당부했다.

 

배재고 사태가 확산되자 지난 5월 황금사자기 대회 당시 발생했던 또 다른 지역 비하 사건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서울 충암고 소속 한 선수가 광주일고 선수들에게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서울 지역 명문 고교 야구부에서 잇따라 발생한 이러한 행태는 학생 선수들의 인권 감수성과 역사 교육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교육청은 서울 시내 모든 학교 운동부를 대상으로 혐오 표현 근절 교육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역시 이번 사안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스포츠공정위원회를 긴급 소집했다. 협회는 경기 현장에서 수집된 증거와 관련자들의 진술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7월 1일 징계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스포츠 정신을 훼손하고 지역 갈등을 부추긴 학생 선수들에 대해 출전 정지 등 강력한 처벌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협회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에는 사안의 폭발력이 크다고 보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착수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가해 학생들에 대한 교육적 조치와 더불어 근거 없는 신상 털기나 과도한 비난이 확산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이번 사안이 사법적 처벌이나 사적 제재가 아닌 교육의 원칙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지역 비하와 역사 왜곡이 스포츠 현장에까지 침투했다는 사실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여전히 거세다. 교육 당국과 야구 협회가 내놓을 후속 대책이 무너진 스포츠 정신과 상처 입은 지역 민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왕사남' 열풍에 군위 엄흥도 묘소 '북적'

화본리는 최근 영화 속 주인공 엄흥도의 자취를 확인하려는 이들로 북적인다. 이곳 산108번지에 자리한 엄흥도의 묘소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면 삼족을 멸하겠다는 세조의 서슬 퍼런 엄명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왕의 마지막을 지켰던 한 충신의 절개를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영화의 기록적인 흥행은 박제된 역사 속 인물이었던 엄흥도를 우리 곁의 생생한 영웅으로 불러내며 고요했던 산골 마을을 활기 넘치는 답사지로 변모시켰다.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엄흥도 묘'를 가리키는 이정표와 함께 성역임을 알리는 홍살문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안내판에 따르면 엄흥도는 영월 호장 시절 단종의 장례를 치른 뒤 후환을 피해 군위 등지에 은거하며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러 지역에 관련 유적이 흩어져 있지만, 학계에서는 군위의 묘소가 실제 묘역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으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영화를 통해 그의 삶을 접한 관객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묘소가 아니라, 불의에 굴하지 않고 인간의 도리를 다했던 한 남자의 고결한 선택을 마주하는 성소와 같은 공간이 되었다.답사객들을 위한 군위군의 세심한 배려도 눈길을 끈다. 가파른 계단 입구에는 방문객들이 지팡이로 사용할 수 있는 나뭇가지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어 산비탈을 오르는 수고를 덜어준다. 묘역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설치된 이정표와 정비된 탐방로는 영화 흥행 이후 급증한 인파를 수용하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을 짐작하게 한다. 묘소 앞에 서서 묵념을 올리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500여 년 전 단종이 겪었을 비극과 그 곁을 지켰던 엄흥도의 고독한 결단에 대한 경외심이 묻어난다.묘소 참배를 마친 뒤 발길을 옮기면 나타나는 화본역은 답사의 또 다른 묘미를 선사한다. 철길 주변의 수려한 풍광으로 이름난 이곳은 특히 25m 높이의 급수탑이 명물로 꼽힌다. 증기기관차 시대의 유물인 급수탑 내부는 한여름에도 냉장고처럼 시원한 공기를 머금고 있어 무더위에 지친 답사객들에게 최고의 휴식처가 된다. 탑 벽면에 새겨진 '석탄 절약'이라는 옛 구호들은 관객들을 영화 속 조선 시대를 넘어 근현대사의 시간 여행으로 안내하며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군위 화본리 답사는 단순히 영화의 배경지를 둘러보는 것을 넘어 지역의 문화유산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화본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국보로 지정된 '군위 아미타여래 삼존석굴'이 자리하고 있어 역사 탐방의 깊이를 더한다. 영화 한 편이 불러일으킨 관심이 잊혔던 충신의 삶을 조명하고, 나아가 주변 관광 자원과의 연계를 통해 대구 근교의 새로운 여행 코스를 완성한 셈이다. 지도를 펼쳐 들고 다음 행선지를 확인하는 답사객들의 표정에는 영화가 남긴 여운과 새로운 발견의 설렘이 교차한다.폭염과 폭우 예보가 오가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엄흥도의 묘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던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군위의 산자락은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영화의 흥행이 지속되는 한, 단종을 향한 일편단심을 품고 숨어 살았던 엄흥도의 은거지는 시대를 초월한 충의의 상징이자 부산한 도심을 벗어난 이들의 쉼터로 더욱 사랑받을 전망이다. 군위군청이 새로 마련한 주차장에는 오늘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차량이 줄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