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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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마약 해도 무죄? 마약법 '처벌 공백'

 정부가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을 뿌리 뽑기 위해 고강도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할 의료계 내부의 법적 구멍은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 현행 마약류관리법은 의사가 동료 의사에게 치료 외 목적으로 마약류를 처방받아 투약하더라도 이를 직접 처벌할 규정이 미비한 상태다. 일반인이나 연예인이 마약류 오남용으로 엄중한 사법 처리를 받는 것과 대조적으로, 전문 지식을 갖춘 의사들이 오히려 법망을 교묘히 피해 가는 불합리한 상황이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입법 불비는 의료윤리를 저버린 일부 의사들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초래하며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그동안 다른 의사에게 마약류를 처방받은 의사를 공범으로 기소해왔으나,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 추세다. 법원은 처방을 내린 의사와 받은 환자를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대향범' 관계로 보고, 별도의 처벌 규정이 없는 한 처방받은 쪽을 공범으로 묶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뇌물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을 각각의 조항으로 처벌하듯, 마약류 처방 역시 수령자에 대한 명확한 처벌 근거가 법전에 명시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결국 수사기관이 우회적인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법원의 엄격한 법리 해석에 막혀 무죄가 선고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과거 을지재단 회장의 상습 투약 사건은 이러한 법적 허점을 여실히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당시 해당 회장은 수년간 엄청난 양의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단 소속 병원 의사들과 공모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대향범 법리에 밀려 힘을 쓰지 못했다. 의사라는 신분이 오히려 처벌을 피하는 방패가 된 셈이다. 이는 마약류 취급자로서 일반인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전문가 집단에 대해 우리 법 체계가 얼마나 느슨하게 설계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의사 스스로가 자신에게 약물을 처방하는 '셀프 처방' 문제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2024년 법 개정을 통해 의사의 셀프 처방을 금지하는 근거가 마련됐지만, 현재 금지 대상으로 지정된 약물은 프로포폴 하나에 불과하다. 식약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제 의사들의 셀프 처방 중 프로포폴이 차지하는 비중은 1% 미만인 반면, 졸피뎀이나 항불안제 같은 향정신성의약품의 비중은 압도적으로 높다. 현장에서는 이미 오남용이 심각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시행규칙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해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정치권에서도 이러한 입법 공백을 메우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최근 국회에서는 의사가 오남용이 우려되는 경우 처방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되는 등 제도 개선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동료 의사를 통한 부당 처방이나 셀프 처방 규제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법 개정까지는 이해관계 조율과 사회적 합의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NIMS)을 활용한 실시간 감시 체계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의료용 마약류의 안전한 관리는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전문가 집단의 일탈을 방치하는 법적 공백은 조속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다. 정부는 하반기부터 AI를 활용한 감시 체계 전환 등 기술적 보완을 예고했으나, 근본적인 법적 처벌 근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대책에 그칠 우려가 크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자정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국회가 얼마나 신속하게 입법 보완에 나설지가 오남용 근절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수사기관과 법원, 입법부가 머리를 맞대고 마약류 관리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도출해야 할 시점이다.

 

 

 

일곱 왕자 성불한 칠불사, 영지의 전설

막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약 5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이 거목은 최치원이 꽂은 지팡이에서 싹이 돋았다는 신비로운 전설을 품고 있다. 마을을 넉넉히 감싸 안은 웅장한 가지는 천년 전 선비가 꿈꿨던 이상향의 입구를 지키는 파수꾼처럼 당당하게 서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계곡의 물길을 따라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물살이 빚어낸 기암괴석 사이에 '세이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최치원이 속세의 번잡한 소리에 오염된 귀를 씻어냈다는 이곳은, 지금도 맑은 물줄기가 끊임없이 흐르며 세속의 때를 벗겨내려는 이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전한다. 수정처럼 투명한 대성계곡의 수면 위로 비치는 숲의 그림자는 최치원이 지향했던 무욕의 삶이 어떤 풍경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자연과 역사가 교차하는 이 공간은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성찰의 장소로 기능한다.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칠불사는 화려한 단청보다 깊은 적막이 먼저 다가오는 수행도량이다. 가야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했다는 설화에서 유래한 이 절은 지리산 반야봉 아래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다. 어머니 허황옥 왕비가 아들들을 그리워하며 만들었다는 연못 '영지'에는 성불한 왕자들의 모습이 비쳤다는 애틋한 이야기가 흐른다. 전설은 세월을 견디며 이끼 낀 석축과 고요한 경내 곳곳에 스며들어 천년고찰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완성한다.칠불사의 명성은 독특한 온돌 구조를 지닌 '아자방'에서 정점을 찍는다. 한 번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온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이 선방은 한국 불교 수행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산이다. 조선 후기의 다성 초의선사 역시 이곳에 머물며 참선과 차를 하나로 보는 '선다일여'의 정신을 다듬었다. 아자방의 온기는 단순히 육신의 추위를 녹이는 것을 넘어, 혹독한 정진을 이어갔던 수행자들의 뜨거운 구도열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해주는 매개체가 된다.경내를 천천히 거니는 스님들의 포행은 칠불사의 적막을 더욱 깊고 경건하게 만든다. 참선 후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이 느린 발걸음은 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 계곡물 소리와 어우러져 하나의 수행 예술을 연출한다. 인위적인 장식 없이 자연의 순리대로 배치된 전각들은 지리산의 사계절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방문객들은 말없이 이어지는 스님들의 행선(行禪)을 지켜보며 도심에서 잊고 지냈던 내면의 고요를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대성계곡의 맑은 물줄기에서 시작해 칠불사의 아자방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단순한 탐방로가 아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명상의 통로다. 최치원이 귀를 씻었던 물소리는 여전히 계곡을 울리고, 일곱 왕자가 깨달음을 얻었던 고요는 칠불사 경내에 가득하다. 역사와 전설, 그리고 수행의 향기가 한데 어우러진 지리산의 이 길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춰 서서 삶의 근원적인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