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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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소리에 국경 없다" 뉴욕 출신 해녀의 제주 정착기

 제주도의 푸른 바다 아래, 거친 숨비소리를 내뱉으며 해산물을 채취하는 푸른 눈의 여성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미국 뉴욕 출신의 카일리 젠터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정식 해녀 면허를 취득해 활동 중인 유일한 외국인이다. 낯선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이 강했던 어촌 마을에서 그녀는 이제 '미국 꼬마'라는 별명을 넘어 해녀들의 살가운 '딸'로 인정받으며 공동체의 핵심 일원으로 뿌리를 내렸다. 최근 외신을 통해 소개된 그녀의 사연은 소멸 위기에 처한 제주 해녀 문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젠터가 제주와 인연을 맺은 과정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일본어 전공자였던 그녀는 2012년 영어 강사직을 통해 한국 땅을 처음 밟았고, 4년 뒤 제주로 거처를 옮기며 섬 생활을 시작했다. 해녀라는 직업은 당초 그녀의 계획에 없었으나, 젊은 피 수혈이 절실했던 서귀포시 대정읍 영락리 마을 사람들과의 만남이 운명을 바꿨다. 외국인이라는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그녀는 마을 면접을 자처했고, 해녀 학교에서의 혹독한 훈련을 거쳐 올해 초 마침내 정식 물질을 시작했다.

 


그녀가 진정한 공동체의 일원이 된 계기는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닌 정서적 교감에 있었다. 거친 파도 속에서 선배 해녀가 도움을 요청하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젠터는 비로소 자신이 신뢰받는 동료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해녀 문화는 단순히 해산물을 잡는 행위를 넘어, 서로의 생명을 지켜주는 끈끈한 연대 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젠터는 이러한 독특한 공동체 정신에 매료되었으며, 마을 사람들의 개방적인 태도와 따뜻한 배려에 깊은 감사를 표하고 있다.

 

하지만 젠터가 마주한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제주 해녀 박물관의 통계에 따르면 현역 해녀의 대다수가 70세 이상의 고령층이며, 30대 이하의 젊은 층은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기후 변화에 따른 수온 상승은 바닷속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해조류가 사라지면서 소라와 해삼 등 해산물 수확량이 급감했고, 이는 해녀들의 생계와 전통 전승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은 사라져가는 바다 자원을 보며 후배 세대에게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젠터는 해녀 문화의 지속 가능성을 믿는다. 그녀는 해녀를 '마지막 세대'로 규정하는 비관적인 시선을 거부하며, 자신과 같은 젊은 세대가 여전히 바다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한다. 젠터에게 물질은 단순한 직업을 넘어 평생을 바칠 약속이자 책임감의 표현이다. 그녀는 자신을 받아준 마을에 보답하기 위해 매일 바다로 향하며, 전통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미국인 해녀의 등장은 폐쇄적이었던 어촌 공동체가 외부 세계와 소통하며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젠터는 이 마을에서 살고 죽겠다는 결연한 각오로 제주 바다의 일원이 되었으며, 그녀의 존재는 전통문화가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계승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 기후 위기와 고령화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도 젠터의 숨비소리는 제주 바다의 생명력을 증명하며 오늘도 영락리 앞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다.

 

태안 천리포수목원, 팜파스·상사화로 가을 마중

수목원 곳곳에는 팜파스그래스의 풍성한 꽃차례가 일제히 만개하며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여름의 짙은 녹음이 여전히 남아있는 수목원 내부에 은백색의 팜파스그래스가 어우러지면서, 방문객들은 계절이 교차하는 마법 같은 순간을 한눈에 목격할 수 있다.남아메리카 평야 지대를 고향으로 둔 팜파스그래스는 벼과의 여러해살이 식물로, 성인 키를 훌쩍 넘는 1~3m까지 자라나는 것이 특징이다. 길게 뻗은 줄기 끝에 솜털처럼 부드럽고 풍성한 꽃차례를 피워 올리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은빛 물결이 살랑이며 가을의 정취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한다. 특히 햇살을 머금은 꽃차례가 은은하게 빛나는 모습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구름을 연상시키며 탐방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천리포수목원은 국내에서 팜파스그래스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가꿔온 상징적인 장소다. 수목원 측은 지난 1979년 '써닝데일 실버'라는 품종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여 식재하기 시작했으며, 올해로 무려 47년째 그 아름다운 혈통을 이어오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태안의 기후에 적응하며 자라온 이곳의 팜파스그래스는 다른 지역보다 풍성하고 건강한 꽃차례를 자랑하며 국내 최고의 군락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수목원의 가을 풍경을 완성하는 것은 팜파스그래스뿐만이 아니다. 현재 수목원 내부에는 팜파스그래스와 함께 붉은빛 상사화 군락이 만개하여 보랏빛과 은빛, 초록빛이 교차하는 화려한 색의 향연을 보여주고 있다. 화려하게 피어난 상사화와 은은한 팜파스그래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려는 방문객들의 행렬이 이어지면서, 수목원 전체가 거대한 야외 스튜디오를 방불케 하는 활기찬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수목원 관계자는 처서를 기점으로 팜파스그래스가 절정의 기량을 뽐내기 시작하면서 수목원 전체에 가을의 공기가 완연해졌다고 전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차례의 소리와 은빛 물결이 주는 평온함은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최적의 휴식처가 되어준다. 특히 이번 주말은 기온이 적당히 내려가 야외 활동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 갖춰져 있어,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려는 나들이객들의 방문이 절정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바다와 숲이 어우러진 천리포수목원의 지리적 특성은 팜파스그래스의 이국적인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서해의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흔들리는 은빛 꽃차례는 오직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보적인 경관이다. 여름의 끝자락과 가을의 시작점이 만나는 이번 주말, 태안 천리포를 찾는 이들은 47년 역사가 빚어낸 은빛 가을의 진수를 만끽하며 잊지 못할 추억을 새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