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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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명 숨진 아리셀 참사…대법원 판단에 유족 분노

 23명이 사망한 아리셀 화재 참사와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박순관 아리셀 대표에게 징역 4년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박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로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비상구 설치 의무 위반 혐의를 무죄로 본 항소심 판단은 문제가 없다고 봤다. 노동계와 유족 측은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충분히 묻지 않은 판결이라며 반발했다.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0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박 대표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박 대표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에서 형량이 크게 줄었다. 대법원이 항소심 판단을 유지하면서 박 대표의 형량도 징역 4년으로 최종 확정됐다.

 

 

 

박 대표의 아들인 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에게 선고된 징역 7년과 벌금 100만원도 함께 확정됐다. 다른 임직원들에게 선고된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아리셀 법인에 부과된 벌금 8억원 역시 대법원 판결에 따라 확정됐다.

 

이번 판결에서 주요 쟁점 중 하나는 공장 내 비상구 설치 의무 위반 여부였다. 1심은 공장 2층에도 비상구를 설치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고 판단해 박 대표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비상구 설치 의무 위반을 인정하지 않았고, 대법원도 이 같은 판단에 법리적 오류가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특히 박 총괄본부장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비상구 설치 의무 위반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유지했다. 이에 따라 박 대표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박 본부장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 위반을 초래하고 중대산업재해를 발생시켰다는 주위적 공소사실도 무죄로 판단한 항소심 결론이 그대로 확정됐다. 비상구 설치 의무와 관련한 판단이 1심과 항소심에서 달라지면서 박 대표의 형량에도 큰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비상구 설치 의무 위반 혐의와 별개로 박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로서 부담하는 안전·보건 확보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박 본부장이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관리책임자였더라도 사업 전반을 총괄하는 박 대표의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대법원은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책임자와 경영 전반을 총괄하는 경영책임자의 역할을 구분해 판단했다.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별도로 지정돼 있더라도 사업 경영 전반에 관한 최종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경영책임자가 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안전보건업무책임자가 있는 경우에도 사업 경영 전반을 총괄하는 관점에서 결정권 행사가 필요해 경영책임자가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영역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장의 안전 업무를 담당하는 책임자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경영책임자의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법원이 사업총괄책임자와 안전보건업무책임자의 책임을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은 박 대표가 사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폭발과 화재 위험을 확인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업무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책임도 인정했다. 아리셀에 위험성 평가와 관련한 규정 및 계획이 마련돼 있었지만, 리튬전지를 생산하는 사업장의 구체적인 특성과 폭발·화재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판단이다.

 

이는 형식적으로 안전 관련 규정과 계획을 갖추는 것만으로 경영책임자의 의무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업장의 실제 위험 요소를 파악하고 이에 맞는 예방 절차를 마련하는 등 실질적인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유족과 노동계는 대법원의 최종 판단에 강하게 반발했다. 아리셀 참사대책위원회와 산재피해가족협의회는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판결에 대한 유감을 나타냈다. 이들은 “23명의 노동자들 목숨이 10초 만에 아무렇지 않게 판결이 내려졌다”며 “너무 분통하고 억울하다”고 밝혔다.

 

유족 측을 대리하는 신하나 변호사는 판결에 법리적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재판소원을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신 변호사는 “판결문의 법리에 중요한 오해와 왜곡이 있다면 재판소원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유족 측은 판결의 법리적 판단을 추가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노동계 역시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통해 “노동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한 법의 취지를 법원이 좁게 해석하고 책임의 무게를 크게 낮춘 판결을 확정함으로써 제도의 실효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도 경영책임자의 안전 확보 노력과 예방 조치가 형량에 실질적으로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은 경영책임자의 사전 예방 노력 여부 등이 양형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양형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처벌법상 부담하는 안전·보건 확보 의무의 범위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동시에 비상구 설치 의무 위반을 무죄로 판단한 항소심 결론을 유지하면서 참사 책임에 대한 법원의 판단과 유족·노동계의 평가 사이에 큰 간극도 드러냈다.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중대 산업재해에 대해 경영책임자의 형사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는지, 사업장의 안전관리 체계가 실제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마련됐는지를 둘러싼 논의도 이어질 전망이다. 유족 측의 후속 대응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노동계는 경영책임자의 예방 의무와 형량을 엄격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방콕에 이런 곳이? 인도·중국·말레이 문화 여행

를 사용하는 한국과 달리 여러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다양한 민족이 살아가는 곳에서는 문화가 뒤섞인 풍경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여행의 재미는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문화가 한 도시의 일상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 살펴보면 여행의 깊이도 달라진다. 태국의 수도 방콕은 이런 매력을 발견하기 좋은 도시다. 태국은 미얀마와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타이족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지만 중국계와 말레이계, 인도계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도 함께 살아간다. 따라서 방콕을 여행하면서 태국 고유의 문화만 경험하기보다는 여러 공동체가 만들어 낸 종교와 음식, 거리 풍경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이 도시를 이해하는 방법이다.방콕에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싶다면 아침을 파후랏의 시크교 사원 스리구루싱사바에서 시작해 볼 만하다. 이곳에서는 국적과 종교,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방문객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시크교 전통인 ‘랑가르’가 이어진다. 특별한 축제나 행사가 있을 때만 마련되는 식사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음식을 나누는 전통이라는 점이 특징이다.사원에 들어서려면 입구에서 신발을 벗어야 한다. 1층에서는 사람들이 카펫 위에 앉아 아침 기도를 하고 있다. 잠시 기도 공간의 분위기를 느낀 뒤 식사가 제공되는 2층으로 올라가면 방문객들을 위한 음식이 준비돼 있다. 메뉴는 담백한 로티 빵과 콩·감자로 만든 카레, 코코넛 밀크 소스 등이다. 달콤한 밀크티까지 받아 바닥에 앉아 먹는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같은 음식을 나누는 모습은 시크교가 중시하는 평등과 나눔의 가치를 보여준다.처음 찾아온 여행객에게도 정성껏 음식을 내어주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식사 후 설거지를 돕겠다고 제안해도 일손이 충분하다며 사양할 만큼 방문객을 맞이하는 분위기도 자연스럽다. 사원을 방문할 때는 성별과 관계없이 머리에 작은 두건인 루말을 착용해야 한다. 파후랏 일대를 둘러본다면 힌두교 사원인 스리마하마리암만도 함께 방문해 볼 만하다. 시크교 사원과 힌두교 사원은 공간을 꾸민 방식과 분위기가 크게 달라 종교문화의 차이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파후랏은 인도계 공동체가 형성돼 있어 ‘리틀 인디아’로도 불린다. 과거에는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 불편했지만 2019년 지하철 삼욧역이 개통되면서 접근성이 나아졌다. 인도 전통 의상과 향신료, 각종 소품을 구경하는 것도 즐겁지만 이 지역을 제대로 경험하려면 현지 음식점에 들러보는 것이 좋다. 화덕에서 구운 난과 향신료가 풍부한 카레, 탄두리 치킨을 비롯해 여러 음식을 한 쟁반에 담아내는 ‘탈리’는 인도식 한 상 차림에 해당한다. 식사 후에는 달콤한 인도 과자를 차와 함께 맛보며 여유를 즐길 수 있다.파후랏에서 조금만 걸으면 방콕의 대표적인 차이나타운인 야오와랏이 나온다. 지하철로도 한 정거장 거리다. 18세기 후반부터 형성된 이 지역은 중국계 공동체의 역사와 음식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다. 특히 중국의 설 명절 무렵이면 거리가 축제 분위기로 바뀐다.태국의 중국계 이민자 가운데는 광둥성과 푸젠성, 하이난성 등 중국 남부 출신이 많다. 이들은 낯선 땅에서 종교시설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며 자신들의 문화를 이어 왔다. 야오와랏의 중심에 자리한 중국 불교 사원 왓망콘카말라왓은 이러한 문화적 특징을 보여준다. 태국 사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 양식과는 달리 중국 남부의 영향을 받은 건물에 용과 봉황을 장식하고 붉은색과 황금색을 활용했다. 사원에서는 향을 피우고 기도하며 복을 비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차이나타운의 매력은 종교시설에만 머물지 않는다. 주변에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중국 음식점과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식당이 함께 자리한다. 일부 딤섬 전문점은 전통 음식을 세련된 담음새로 선보여 마치 애프터눈 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두유와 두부를 활용한 디저트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된다. 음식의 맛은 물론 공간과 플레이팅까지 즐길 수 있어 미식과 사진 촬영을 함께 즐기는 여행객에게도 흥미로운 장소다.야오와랏의 분위기는 해가 질 무렵 더욱 생생해진다. 거리 곳곳에서 테이블과 의자가 나오고 노점이 이어지면서 밤시장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숯불 위에서는 해산물이 익어가고, 중국어와 태국어가 뒤섞인 간판에는 붉은 네온 조명이 켜진다. 여러 언어와 음식, 사람들의 움직임이 한데 어우러지는 풍경은 방콕의 밤을 특별하게 만든다.방콕에서는 말레이계 공동체의 문화도 만날 수 있다. 태국 남부와 말레이시아 북부는 역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으며, 이 지역의 역사적 배경은 오늘날 태국 남부에 말레이계 무슬림 공동체가 자리 잡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방콕 지상철 랏차테위역 인근의 다룰아만모스크는 이슬람 문화와 지역 공동체의 일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장소다. 이곳에서는 태국어와 말레이어를 사용해 예배하며, 금요일이면 주변의 할랄 음식 노점과 식당을 찾는 사람들로 활기를 띤다.음식은 말레이계 문화를 경험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코코넛 밀크 향이 감도는 밥에 여러 반찬을 곁들인 나시르막은 대표적인 말레이시아 음식이다. 인도식 카레와는 다른 풍미의 말레이식 카레, 쫄깃한 로티 빵, 거품을 풍성하게 내 만든 밀크티 테타릭도 맛볼 만하다. 같은 아시아 음식이라도 지역과 공동체에 따라 재료와 조리법, 맛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방콕에서는 하루 동안 여러 문화권의 생활상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아침에는 시크교 사원에서 음식을 나누고, 낮에는 파후랏의 인도계 상점과 식당을 둘러본 뒤 저녁에는 차이나타운의 야시장을 즐길 수 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 말레이계 무슬림 공동체의 음식과 종교문화도 접할 수 있다. 이처럼 방콕의 매력은 화려한 사원이나 북적이는 시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문화가 오랜 시간 공존하며 도시의 일상 속에 녹아 있다는 점이야말로 방콕 여행을 한층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