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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냐, 돈이냐"…232년 전통의 1센트, 결국 '효율성' 앞에 무릎 꿇다

 1793년 첫선을 보인 이래 232년간 미국의 화폐 역사를 지켜온 1센트 동전이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 조폐 시설에서는 마지막 일반 유통용 1센트 동전의 생산이 이뤄지며 한 시대의 종언을 고했다. 이번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액면가를 훌쩍 뛰어넘는 제조 비용 문제를 지적하며 재무부에 신규 발행 중단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1센트 동전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1.69센트에 달해, '만들수록 손해'인 비효율적인 구조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생산 중단 조치로 미국 정부는 연간 약 5600만 달러(약 823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화폐 단위의 변화를 넘어, 국가 경제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하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된다.

 

물론 당장 시중에서 1센트 동전이 자취를 감추는 것은 아니다. 일반 유통용 동전의 생산은 멈추지만, 이미 발행되어 시중에 풀린 약 3000억 개의 1센트 동전은 여전히 법정 화폐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며 계속 사용된다. 따라서 일상적인 상거래 활동에서 1센트 동전을 사용하거나 거스름돈으로 받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유통량이 줄어들고, 점차 다른 결제 수단으로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 재무부는 화폐 수집가들을 위한 수집용 1센트 동전은 앞으로도 제한적으로 계속 생산할 예정이라고 밝혀, 역사적 가치를 지닌 1센트 동전에 대한 수집 열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는 화폐의 실용적 가치와 상징적 가치를 분리하여 접근하는 유연한 정책적 판단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이번 결정은 비단 미국만의 특수한 상황은 아니다. 이미 캐나다, 호주, 아일랜드, 뉴질랜드 등 여러 국가가 비슷한 이유로 자국의 최고액면가 동전 생산을 중단한 바 있다. 이들 국가 역시 제조 비용 부담과 화폐 사용 패턴의 변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특히 신용카드, 모바일 결제 등 비현금 결제 수단이 보편화되면서 소액 동전의 필요성 자체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동전 없는 사회'로의 전환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1센트 동전 생산 중단은 이러한 거대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232년 역사의 미국 1센트 동전 생산 중단은 단순한 화폐 정책의 변화를 넘어,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중요한 상징적 사건이다.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실용주의적 판단과 비현금 결제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맞물린 결과물인 셈이다. 비록 주머니 속에서 짤랑거리던 1센트 동전은 점차 보기 힘들어지겠지만, 그 속에 담긴 미국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는 화폐 수집가들의 손에서, 그리고 박물관의 기록 속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앞으로 미국 사회가 1센트 동전의 부재에 어떻게 적응해 나갈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다른 국가들의 화폐 정책에는 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맥도날드 저격'하며 태어난 그 운동, 미국 한복판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다

임의 중심에 미국 캘리포니아의 주도, 새크라멘토가 떠오르고 있다. ‘성스러운 강’이라는 이름의 이 도시는 ‘팜 투 포크(Farm-to-Fork, 농장에서 식탁까지)’라는 슬로건을 도시의 정체성으로 내걸었다. 1986년 이탈리아에서 맥도날드에 대항하며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의 정신을 미국 서부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그 결과는 놀라워서, 슬로푸드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테라 마드레(어머니의 땅)’ 축제가 사상 처음으로 이탈리아 밖인 바로 이곳 새크라멘토에서 열리는 영광으로 이어졌다. 이는 새크라멘토가 단순한 미식 도시를 넘어, 패스트푸드로 상징되는 현대 문명에 맞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세계적인 구심점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다.새크라멘토가 이처럼 ‘미국의 팜 투 포크 수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1852년의 대홍수가 시에라산맥의 비옥한 퇴적물을 센트럴밸리 전역으로 실어 날랐고, 새크라멘토강과 아메리카강이 만나는 풍부한 수량, 강렬한 햇살과 서늘한 저녁 기후가 더해져 농사를 위한 최적의 땅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도시 반경 100km 안에서 거의 모든 식자재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요리사의 천국’이 탄생했다. 전 세계 아몬드 생산량의 90% 이상, 세계 3대 자포니카 쌀 생산지, 미국 최대 캐비어 양식장이 이곳에 있으며, 토마토, 올리브, 와인 등도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이다. 파머스마켓에 들어서는 순간, 숯불 위에서 구워지는 패티와 갓 구운 빵, 신선한 농작물이 뒤섞여 뿜어내는 풍요로운 향기는 이 도시가 가진 땅의 힘을 오감으로 느끼게 한다.이처럼 거대한 농지가 세계적인 미식 도시로 탈바꿈한 데에는 몇몇 선구자들의 ‘가벼운 우연’과 ‘열정적인 모험’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이민 2세대 농부였던 레이 융이 우연히 얻은 둥근 토마토 씨앗을 심었다가 밭 전체를 뒤덮자, 처리를 위해 현지 레스토랑에 직접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 ‘팜(농장)’에서 ‘포크(식탁)’로 이어지는 직거래 문화의 시초가 되었다. 여기에 ‘요리계의 인디애나 존스’로 불린 식료품점 아들 대릴 코르티가 가세했다. 그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누비며 당시 미국에는 생소했던 파르메산 치즈, 트러플, 발사믹 식초 등을 들여와 새크라멘토의 식탁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이들의 노력이 씨앗이 되어 2012년, 케빈 존슨 전 시장은 새크라멘토를 ‘미국 팜 투 포크 운동의 수도’로 공식 선언하기에 이르렀다.새크라멘토의 철학은 결국 ‘시간의 회복’으로 귀결된다. 세계적인 셰프 엘리자베스 포크너는 테라 마드레 행사에서 “내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패스트푸드”라며, 아이들의 ‘인앤아웃 햄버거’ 타령에 씁쓸해했다. 그녀에게 패스트푸드와의 싸움은 곧 자신의 요리를 지속하게 하는 동력이다. 포크너는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현지 농부와 어부를 직접 만나 제철 식재료를 확인하는 것을 요리의 첫걸음으로 삼는다. 이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기술을 넘어, 생산자와의 관계를 맺고 자연의 리듬을 존중하는 슬로푸드의 핵심 가치와 맞닿아 있다. 멕시코계, 아프가니스탄계 이민자들이 기른 작물이 스페인 음식에 매료된 요리사의 손에서 파에야로 재탄생하는 새크라멘토의 식탁은, 결국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촘촘히 엮여 만들어내는 ‘인간적인 시간’ 그 자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