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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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당의 선택, '카멜레온' 혹은 '구원자'

 영국 노동당을 이끌어온 키어 스타머 총리가 취임 2주년을 앞두고 전격 사임을 선언하면서 영국 정계가 거대한 전환점에 섰다. 스타머 총리의 퇴진 발표와 동시에 차기 대권 주자로 가장 강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은 앤디 버넘 전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이다. 버넘은 최근 치러진 보궐선거를 통해 하원에 재입성하며 총리직 수행을 위한 필수 조건인 현역 의원 신분을 확보했다. 그의 의회 복귀는 수세에 몰렸던 스타머 체제의 종말을 앞당기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이제 그는 다우닝가 10번지 입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버넘의 성장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정치인의 경로를 보여준다. 1970년 리버풀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노동당에 입당하며 정치적 신념을 키웠다.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한 뒤 의원실 연구원과 특별보좌관을 거쳐 31세에 고향 인근 북부 지역에서 첫 금배지를 달았다. 이후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 내각에서 보건부 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중앙 정치의 생리를 익혔다. 비록 두 차례의 당 대표 선거에서는 고배를 마셨으나, 이는 오히려 그가 지방 행정가로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발판이 되었다.

 


중앙 정계에서 잠시 물러난 버넘은 9년간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을 역임하며 '북부의 왕'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쌓았다. 특히 팬데믹 당시 중앙 정부의 일방적인 봉쇄 조치가 지방 경제에 불이익을 준다며 정면으로 맞선 사건은 그를 지방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진정성 있는 리더로 각인시켰다. 시장 재임 시절 도입한 버스 시스템 공영 모델 개혁은 행정가로서의 실무 능력을 증명한 대표적 성과로 꼽히며, 이는 현재 경제 성장과 공공 서비스 개선을 갈망하는 영국 유권자들에게 강력한 소구력을 발휘하고 있다.

 

버넘의 정치적 자산은 북부 출신 특유의 솔직한 화법과 유연한 실용주의에 있다. 그는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면서도 민간 기업의 역할을 존중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해 왔다. 지지자들은 그가 나이절 패라지가 이끄는 우파 영국개혁당의 공세를 막아내고 노동당을 재건할 적임자라고 믿는다. 반면 일각에서는 그가 블레어부터 코빈에 이르기까지 성향이 극단적으로 다른 지도자들 밑에서 모두 살아남았다는 점을 들어 '정치적 카멜레온'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유연성이야말로 분열된 영국을 통합할 최적의 도구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스타머 총리는 사임 발표와 함께 다음 달 초 당 전국집행위원회를 거쳐 9월 의회 개회 전까지 차기 대표 선출을 마무리하겠다는 일정을 공개했다. 노동당 규정에 따르면 당 대표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소속 의원 20% 이상의 지지가 필요한데, 버넘은 이미 이 기준을 훌쩍 넘긴 81명 이상의 지지 세력을 확보한 상태다. 현재까지 버넘에 대적할 만한 뚜렷한 경쟁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어, 이변이 없는 한 그는 7월 중순 노동당의 새 수장이자 영국의 차기 총리로 추대될 것이 확실시된다.

 

버넘은 사임 발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국가를 국민이 바라는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생활비 위기와 주택 문제, 다음 세대를 위한 기회 창출 등 민생 현안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런던 중심의 엘리트 정치에 지친 영국 사회가 북부의 실무형 리더인 버넘을 선택할 준비를 마친 가운데, 그의 다우닝가 입성이 영국의 고질적인 지역 격차와 경제 침체를 해결할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왕사남' 열풍에 군위 엄흥도 묘소 '북적'

화본리는 최근 영화 속 주인공 엄흥도의 자취를 확인하려는 이들로 북적인다. 이곳 산108번지에 자리한 엄흥도의 묘소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면 삼족을 멸하겠다는 세조의 서슬 퍼런 엄명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왕의 마지막을 지켰던 한 충신의 절개를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영화의 기록적인 흥행은 박제된 역사 속 인물이었던 엄흥도를 우리 곁의 생생한 영웅으로 불러내며 고요했던 산골 마을을 활기 넘치는 답사지로 변모시켰다.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엄흥도 묘'를 가리키는 이정표와 함께 성역임을 알리는 홍살문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안내판에 따르면 엄흥도는 영월 호장 시절 단종의 장례를 치른 뒤 후환을 피해 군위 등지에 은거하며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러 지역에 관련 유적이 흩어져 있지만, 학계에서는 군위의 묘소가 실제 묘역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으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영화를 통해 그의 삶을 접한 관객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묘소가 아니라, 불의에 굴하지 않고 인간의 도리를 다했던 한 남자의 고결한 선택을 마주하는 성소와 같은 공간이 되었다.답사객들을 위한 군위군의 세심한 배려도 눈길을 끈다. 가파른 계단 입구에는 방문객들이 지팡이로 사용할 수 있는 나뭇가지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어 산비탈을 오르는 수고를 덜어준다. 묘역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설치된 이정표와 정비된 탐방로는 영화 흥행 이후 급증한 인파를 수용하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을 짐작하게 한다. 묘소 앞에 서서 묵념을 올리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500여 년 전 단종이 겪었을 비극과 그 곁을 지켰던 엄흥도의 고독한 결단에 대한 경외심이 묻어난다.묘소 참배를 마친 뒤 발길을 옮기면 나타나는 화본역은 답사의 또 다른 묘미를 선사한다. 철길 주변의 수려한 풍광으로 이름난 이곳은 특히 25m 높이의 급수탑이 명물로 꼽힌다. 증기기관차 시대의 유물인 급수탑 내부는 한여름에도 냉장고처럼 시원한 공기를 머금고 있어 무더위에 지친 답사객들에게 최고의 휴식처가 된다. 탑 벽면에 새겨진 '석탄 절약'이라는 옛 구호들은 관객들을 영화 속 조선 시대를 넘어 근현대사의 시간 여행으로 안내하며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군위 화본리 답사는 단순히 영화의 배경지를 둘러보는 것을 넘어 지역의 문화유산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화본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국보로 지정된 '군위 아미타여래 삼존석굴'이 자리하고 있어 역사 탐방의 깊이를 더한다. 영화 한 편이 불러일으킨 관심이 잊혔던 충신의 삶을 조명하고, 나아가 주변 관광 자원과의 연계를 통해 대구 근교의 새로운 여행 코스를 완성한 셈이다. 지도를 펼쳐 들고 다음 행선지를 확인하는 답사객들의 표정에는 영화가 남긴 여운과 새로운 발견의 설렘이 교차한다.폭염과 폭우 예보가 오가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엄흥도의 묘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던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군위의 산자락은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영화의 흥행이 지속되는 한, 단종을 향한 일편단심을 품고 숨어 살았던 엄흥도의 은거지는 시대를 초월한 충의의 상징이자 부산한 도심을 벗어난 이들의 쉼터로 더욱 사랑받을 전망이다. 군위군청이 새로 마련한 주차장에는 오늘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차량이 줄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