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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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7.5 강진... 126년 만의 재앙

 베네수엘라가 126년 만에 닥친 역대급 강진으로 인해 최악의 공휴일을 맞이했다. 현지 시간으로 24일 저녁, 북중미 월드컵 경기에 열중하던 시민들은 불과 40초 간격으로 몰아친 두 차례의 강력한 진동에 공포에 떨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이번 지진은 규모 7.2의 전진에 이어 규모 7.5의 본진이 연달아 발생한 것으로, 이는 1900년 규모 7.7 지진 이후 베네수엘라 역사상 두 번째로 강력한 위력을 기록했다. 지진의 여파는 국경을 넘어 브라질 아마존 지역까지 전달될 정도로 광범위했다.

 

수도 카라카스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시내 곳곳의 고층 건물이 종잇장처럼 흔들렸고, 북부 해안 도시 라과이라에서는 수십 채의 건물이 순식간에 붕괴했다. 특히 카라카스의 부촌으로 알려진 로스팔로스그란데스 지역에서는 22층 규모의 대형 건물이 무너져 내려 수많은 시민이 잔해 아래 갇히는 참사가 발생했다. 전력과 인터넷이 일시에 차단된 어둠 속에서 가족의 이름을 부르짖는 시민들의 비명이 거리를 가득 메웠으며, 여진을 두려워하는 주민들은 잠옷 차림으로 노숙을 자처하고 있다.

 


현장의 목격자들은 이번 지진의 위력이 과거의 어떤 재난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고 증언했다. 1967년의 대지진을 경험했던 노인들조차 이번 진동 앞에서는 아무것도 잡지 못한 채 무력하게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월드컵 중계를 시청하다 급히 대피한 시민들은 거리로 나온 뒤에야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SNS를 통해 공유된 영상에는 외벽이 처참하게 뜯겨 나간 건물들과 무너진 집터 앞에서 망연자실해 하는 구조대원들의 모습이 담겨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그대로 전했다.

 

현재 피해 지역에서는 생존자를 구하기 위한 필사적인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카라카스 차카오 구를 중심으로 500여 명의 구조 인력이 투입되어 잔해를 헤치고 있으나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수년간 이어진 경제난으로 의료 시스템이 붕괴 직전에 몰린 베네수엘라의 내부 사정상 기본적인 구호 물자조차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주요 도로가 폐쇄되고 통신망이 마비된 탓에 구호품 전달을 위한 물류 이동마저 차질을 빚고 있어 구조 작업은 더디게만 진행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베네수엘라를 돕기 위해 즉각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미국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수색 및 구조팀과 의료 자원을 즉시 배치하기로 했으며, 과거 식민 통치국이었던 스페인 역시 형제 국가로서 모든 긴급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브라질과 칠레, 아르헨티나 등 인근 중남미 국가들도 연대 의사를 표명하며 구호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다행히 베네수엘라의 주력 산업인 원유 생산 시설은 지진의 직접적인 타격권에서 벗어나 경제적 치명타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진 발생 하루가 지났지만 베네수엘라 전역은 여전히 거대한 슬픔과 공포에 잠겨 있다. 구조대원들이 들것에 실어 나르는 부상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무너진 건물 아래 잠든 생명을 구하기 위한 작업은 밤낮없이 계속되고 있다. 월드컵의 환호성이 비명으로 바뀐 그날 밤의 상흔은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예고된 가운데, 베네수엘라가 이 사상 초유의 재난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일곱 왕자 성불한 칠불사, 영지의 전설

막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약 5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이 거목은 최치원이 꽂은 지팡이에서 싹이 돋았다는 신비로운 전설을 품고 있다. 마을을 넉넉히 감싸 안은 웅장한 가지는 천년 전 선비가 꿈꿨던 이상향의 입구를 지키는 파수꾼처럼 당당하게 서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계곡의 물길을 따라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물살이 빚어낸 기암괴석 사이에 '세이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최치원이 속세의 번잡한 소리에 오염된 귀를 씻어냈다는 이곳은, 지금도 맑은 물줄기가 끊임없이 흐르며 세속의 때를 벗겨내려는 이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전한다. 수정처럼 투명한 대성계곡의 수면 위로 비치는 숲의 그림자는 최치원이 지향했던 무욕의 삶이 어떤 풍경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자연과 역사가 교차하는 이 공간은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성찰의 장소로 기능한다.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칠불사는 화려한 단청보다 깊은 적막이 먼저 다가오는 수행도량이다. 가야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했다는 설화에서 유래한 이 절은 지리산 반야봉 아래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다. 어머니 허황옥 왕비가 아들들을 그리워하며 만들었다는 연못 '영지'에는 성불한 왕자들의 모습이 비쳤다는 애틋한 이야기가 흐른다. 전설은 세월을 견디며 이끼 낀 석축과 고요한 경내 곳곳에 스며들어 천년고찰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완성한다.칠불사의 명성은 독특한 온돌 구조를 지닌 '아자방'에서 정점을 찍는다. 한 번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온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이 선방은 한국 불교 수행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산이다. 조선 후기의 다성 초의선사 역시 이곳에 머물며 참선과 차를 하나로 보는 '선다일여'의 정신을 다듬었다. 아자방의 온기는 단순히 육신의 추위를 녹이는 것을 넘어, 혹독한 정진을 이어갔던 수행자들의 뜨거운 구도열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해주는 매개체가 된다.경내를 천천히 거니는 스님들의 포행은 칠불사의 적막을 더욱 깊고 경건하게 만든다. 참선 후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이 느린 발걸음은 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 계곡물 소리와 어우러져 하나의 수행 예술을 연출한다. 인위적인 장식 없이 자연의 순리대로 배치된 전각들은 지리산의 사계절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방문객들은 말없이 이어지는 스님들의 행선(行禪)을 지켜보며 도심에서 잊고 지냈던 내면의 고요를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대성계곡의 맑은 물줄기에서 시작해 칠불사의 아자방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단순한 탐방로가 아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명상의 통로다. 최치원이 귀를 씻었던 물소리는 여전히 계곡을 울리고, 일곱 왕자가 깨달음을 얻었던 고요는 칠불사 경내에 가득하다. 역사와 전설, 그리고 수행의 향기가 한데 어우러진 지리산의 이 길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춰 서서 삶의 근원적인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