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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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8일의 기적, 9m 잔해 속 생환

 베네수엘라를 덮친 연쇄 강진의 비극 속에서 인류의 의지가 만들어낸 기적이 일어났다. 지진 발생 8일 만인 지난 2일, 라과이라주 카티아라마르의 무너진 쇼핑센터 잔해 아래 갇혀 있던 43세 야간 경비원 에르난 알베르토 힐 플로레스가 무사히 구조됐다. 그는 약 9m 깊이의 콘크리트 더미 아래 고립되어 있었으나, 다국적 합동 구조대의 끈질긴 수색과 70시간에 걸친 사투 끝에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재난 구호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72시간 골든타임'을 무려 5일이나 넘긴 시점에서 이뤄진 생환이라 그 감동은 더욱 컸다.

 

구조 작전은 지난달 28일 음향 탐지기와 레이더에 미세한 신호가 잡히면서 급물살을 탔다. 생존을 확인한 구조대는 칠레를 중심으로 미국, 멕시코 등 8개국이 참여한 대규모 합동팀을 꾸려 정밀한 굴착 작업에 돌입했다. 현장은 폭우와 잦은 여진으로 인해 굴착 통로가 수차례 무너져 내리는 등 극도로 위험한 상태였다. 구조대는 인접 건물의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해 금속 구조물을 하나하나 정교하게 절단하며 진입로를 확보해 나갔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구조대원들은 오직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현장을 지켰다.

 


고립된 기간 동안 힐 플로레스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버텼다. 지진 당시 그가 머물던 경비 초소가 무너지지 않고 버텨준 덕분에 치명적인 압박을 피할 수 있었고, 내부에는 생존에 필수적인 공기층이 형성됐다. 구조대는 통로를 뚫는 동안 콘크리트 틈새로 호스를 밀어 넣어 물과 전해질 음료, 의료용 수액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며 그의 탈수를 막았다. 특히 칠레 출신의 베테랑 구조대원은 좁은 틈 사이로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며 고립된 그가 심리적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자처했다.

 

구조 직전 촬영된 영상에는 힐 플로레스가 좁은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며 공포를 이겨내는 모습이 담겨 전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는 혹시라도 구조에 실패해 가족들이 더 큰 상처를 입을까 봐, 발견 초기에는 아내에게 자신의 생존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가족을 먼저 생각했다. 하지만 구조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70시간의 사투 끝에 그를 지상으로 끌어올렸다. 산소마스크를 쓴 채 들것에 실려 나오는 그를 향해 현장에 모인 각국 구조대원들은 국적을 초월한 환호와 자축의 박수를 보냈다.

 


유엔 재난평가조정팀 관계자는 이번 구조를 두고 "오직 기적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며 경의를 표했다. 8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채 어둠 속에 갇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힐 플로레스는 현재 의료기관에서 안정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절망 속에서 보낸 시간들이 생존 소식 하나로 씻겨 내려갔다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남편을 구해준 전 세계 구조대원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번 생환 소식은 재난의 현장에서 국제적 연대와 협력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10살과 8살 된 두 자녀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 힐 플로레스는 이제 베네수엘라를 넘어 전 세계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인물이 됐다. 극한의 환경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은 한 남자의 의지와, 그 끈을 함께 맞잡아준 다국적 구조대의 헌신은 비극적인 지진의 상처를 치유하는 따뜻한 위로가 되고 있다. 힐 플로레스는 현재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 건강을 되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일곱 왕자 성불한 칠불사, 영지의 전설

막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약 5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이 거목은 최치원이 꽂은 지팡이에서 싹이 돋았다는 신비로운 전설을 품고 있다. 마을을 넉넉히 감싸 안은 웅장한 가지는 천년 전 선비가 꿈꿨던 이상향의 입구를 지키는 파수꾼처럼 당당하게 서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계곡의 물길을 따라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물살이 빚어낸 기암괴석 사이에 '세이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최치원이 속세의 번잡한 소리에 오염된 귀를 씻어냈다는 이곳은, 지금도 맑은 물줄기가 끊임없이 흐르며 세속의 때를 벗겨내려는 이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전한다. 수정처럼 투명한 대성계곡의 수면 위로 비치는 숲의 그림자는 최치원이 지향했던 무욕의 삶이 어떤 풍경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자연과 역사가 교차하는 이 공간은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성찰의 장소로 기능한다.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칠불사는 화려한 단청보다 깊은 적막이 먼저 다가오는 수행도량이다. 가야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했다는 설화에서 유래한 이 절은 지리산 반야봉 아래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다. 어머니 허황옥 왕비가 아들들을 그리워하며 만들었다는 연못 '영지'에는 성불한 왕자들의 모습이 비쳤다는 애틋한 이야기가 흐른다. 전설은 세월을 견디며 이끼 낀 석축과 고요한 경내 곳곳에 스며들어 천년고찰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완성한다.칠불사의 명성은 독특한 온돌 구조를 지닌 '아자방'에서 정점을 찍는다. 한 번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온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이 선방은 한국 불교 수행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산이다. 조선 후기의 다성 초의선사 역시 이곳에 머물며 참선과 차를 하나로 보는 '선다일여'의 정신을 다듬었다. 아자방의 온기는 단순히 육신의 추위를 녹이는 것을 넘어, 혹독한 정진을 이어갔던 수행자들의 뜨거운 구도열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해주는 매개체가 된다.경내를 천천히 거니는 스님들의 포행은 칠불사의 적막을 더욱 깊고 경건하게 만든다. 참선 후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이 느린 발걸음은 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 계곡물 소리와 어우러져 하나의 수행 예술을 연출한다. 인위적인 장식 없이 자연의 순리대로 배치된 전각들은 지리산의 사계절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방문객들은 말없이 이어지는 스님들의 행선(行禪)을 지켜보며 도심에서 잊고 지냈던 내면의 고요를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대성계곡의 맑은 물줄기에서 시작해 칠불사의 아자방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단순한 탐방로가 아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명상의 통로다. 최치원이 귀를 씻었던 물소리는 여전히 계곡을 울리고, 일곱 왕자가 깨달음을 얻었던 고요는 칠불사 경내에 가득하다. 역사와 전설, 그리고 수행의 향기가 한데 어우러진 지리산의 이 길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춰 서서 삶의 근원적인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