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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쓰다듬고 웃어줬지만 '유니폼은 안돼'…손흥민이 가나 선수에게 선 그은 이유

 한국 축구의 상징을 넘어 월드클래스 선수 반열에 오른 손흥민의 위상은 이제 경기장 안팎에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매 A매치가 끝날 때마다 상대팀 선수들이 그의 유니폼을 얻기 위해 경쟁적으로 달려드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10년간 활약하며 득점왕과 이달의 선수상을 여러 차례 거머쥔 그의 발자취는 전 세계 축구 선수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그의 실착 유니폼은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하나의 '전리품'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1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가나와의 평가전 직후에도 어김없이 재현되며 그의 세계적인 인기를 다시 한번 실감케 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이날 후반 17분 교체되어 벤치에 있던 손흥민은 그라운드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과거 함부르크 유스 시절 자신을 지도했던 오토 아도 가나 대표팀 감독과 인사를 나누고 동료 및 상대 선수들과 격려를 주고받기 위함이었다. 바로 그때, 노란색 가나 대표팀 유니폼을 손에 든 한 젊은 선수가 그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그는 손흥민의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따라다니며 간절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속삭였다. 손흥민은 그런 그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등 친절하게 응대하며 월드클래스의 품격을 보여주었다.

 


손흥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이 선수의 노력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손흥민의 시그니처 세리머니인 '찰칵 세리머니'까지 따라 하며 자신의 팬심과 유니폼을 향한 열망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이 선수는 가나 1부리그 메디아마 소속의 18세 미드필더 캘빈 은크루마로, 아직 A매치 데뷔전을 치르지 못한 유망주였다. 부상 선수를 대체해 대표팀에 발탁되었지만 일본전과 한국전 모두 벤치만 달궜던 그는,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를 손흥민과의 만남에서 평생의 기념품을 얻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하지만 은크루마의 간절한 노력과 재치 있는 애정 공세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손흥민의 유니폼을 얻지는 못했다. 이는 손흥민의 냉대나 거만이 아닌, 월드클래스 선수다운 현명하고 사려 깊은 대처였다. 그는 이미 지난 볼리비아전에서도 여러 선수가 한꺼번에 몰려들자 정중히 유니폼 교환을 사양하고 기념 촬영으로 대신한 바 있다. 한 선수에게 유니폼을 건네는 순간, 수많은 다른 선수들에게도 똑같이 응대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손흥민은 특정 선수에게만 유니폼을 주는 대신, 모두에게 미소와 친절한 태도로 응대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슈퍼스타의 책임과 배려를 실천했다.

 

'맥도날드 저격'하며 태어난 그 운동, 미국 한복판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다

임의 중심에 미국 캘리포니아의 주도, 새크라멘토가 떠오르고 있다. ‘성스러운 강’이라는 이름의 이 도시는 ‘팜 투 포크(Farm-to-Fork, 농장에서 식탁까지)’라는 슬로건을 도시의 정체성으로 내걸었다. 1986년 이탈리아에서 맥도날드에 대항하며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의 정신을 미국 서부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그 결과는 놀라워서, 슬로푸드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테라 마드레(어머니의 땅)’ 축제가 사상 처음으로 이탈리아 밖인 바로 이곳 새크라멘토에서 열리는 영광으로 이어졌다. 이는 새크라멘토가 단순한 미식 도시를 넘어, 패스트푸드로 상징되는 현대 문명에 맞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세계적인 구심점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다.새크라멘토가 이처럼 ‘미국의 팜 투 포크 수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1852년의 대홍수가 시에라산맥의 비옥한 퇴적물을 센트럴밸리 전역으로 실어 날랐고, 새크라멘토강과 아메리카강이 만나는 풍부한 수량, 강렬한 햇살과 서늘한 저녁 기후가 더해져 농사를 위한 최적의 땅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도시 반경 100km 안에서 거의 모든 식자재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요리사의 천국’이 탄생했다. 전 세계 아몬드 생산량의 90% 이상, 세계 3대 자포니카 쌀 생산지, 미국 최대 캐비어 양식장이 이곳에 있으며, 토마토, 올리브, 와인 등도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이다. 파머스마켓에 들어서는 순간, 숯불 위에서 구워지는 패티와 갓 구운 빵, 신선한 농작물이 뒤섞여 뿜어내는 풍요로운 향기는 이 도시가 가진 땅의 힘을 오감으로 느끼게 한다.이처럼 거대한 농지가 세계적인 미식 도시로 탈바꿈한 데에는 몇몇 선구자들의 ‘가벼운 우연’과 ‘열정적인 모험’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이민 2세대 농부였던 레이 융이 우연히 얻은 둥근 토마토 씨앗을 심었다가 밭 전체를 뒤덮자, 처리를 위해 현지 레스토랑에 직접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 ‘팜(농장)’에서 ‘포크(식탁)’로 이어지는 직거래 문화의 시초가 되었다. 여기에 ‘요리계의 인디애나 존스’로 불린 식료품점 아들 대릴 코르티가 가세했다. 그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누비며 당시 미국에는 생소했던 파르메산 치즈, 트러플, 발사믹 식초 등을 들여와 새크라멘토의 식탁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이들의 노력이 씨앗이 되어 2012년, 케빈 존슨 전 시장은 새크라멘토를 ‘미국 팜 투 포크 운동의 수도’로 공식 선언하기에 이르렀다.새크라멘토의 철학은 결국 ‘시간의 회복’으로 귀결된다. 세계적인 셰프 엘리자베스 포크너는 테라 마드레 행사에서 “내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패스트푸드”라며, 아이들의 ‘인앤아웃 햄버거’ 타령에 씁쓸해했다. 그녀에게 패스트푸드와의 싸움은 곧 자신의 요리를 지속하게 하는 동력이다. 포크너는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현지 농부와 어부를 직접 만나 제철 식재료를 확인하는 것을 요리의 첫걸음으로 삼는다. 이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기술을 넘어, 생산자와의 관계를 맺고 자연의 리듬을 존중하는 슬로푸드의 핵심 가치와 맞닿아 있다. 멕시코계, 아프가니스탄계 이민자들이 기른 작물이 스페인 음식에 매료된 요리사의 손에서 파에야로 재탄생하는 새크라멘토의 식탁은, 결국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촘촘히 엮여 만들어내는 ‘인간적인 시간’ 그 자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