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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축구협회, 2014년 실패 답습"

 한국 축구의 영원한 캡틴 박지성 해설위원이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패배 이후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렸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25일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0-1로 무릎을 꿇었다. 비기기만 해도 조 2위로 32강행을 확정 지을 수 있었던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도 스스로 기회를 걷어찬 결과다. 이로써 한국은 1승 2패, 조 3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들며 타 조 결과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중계석에서 경기를 지켜본 박지성 위원은 이번 패배를 단순한 실력이 아닌 구조적인 붕괴로 규정했다. 그는 경기 종료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국 축구가 과거의 잘못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는 점을 가장 뼈아픈 실책으로 꼽았다. 특히 12년 전 전 국민에게 실망을 안겼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의 준비 과정과 실패 양상이 이번 대회에서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재연되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충분히 학습하고 개선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함정에 다시 빠진 한국 축구의 현실에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박 위원은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던 각종 잡음과 선임 논란,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처참한 경기력이 모두 하나의 선상에 있다고 분석했다. 48개국으로 확대된 대회 규정 덕분에 아직 탈락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1승 2패라는 성적은 과거 기준으로는 명백한 탈락 수치임을 상기시켰다. 그는 현재의 경기력으로는 요행히 32강에 턱걸이한다 해도 토너먼트에서 경쟁력을 보여줄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조별리그 3경기 내내 아무런 전술적 변화를 보여주지 못한 홍명보호의 무색무취한 축구를 강하게 질타했다.

 

비판의 화살은 현장의 코칭스태프를 넘어 한국 축구의 행정을 책임지는 대한축구협회로 향했다. 박 위원은 실패의 역사가 반복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결국 한국 축구를 이끌어가는 수뇌부의 잘못된 판단과 행정에 있다고 직격했다. 2014년의 아픔을 겪고도 시스템적인 개선 없이 인물 위주의 임기응변식 대응으로 일관해온 협회의 태도가 결국 '몬테레이 참사'라는 결과물을 낳았다는 논리다. 이는 그동안 말을 아껴왔던 박지성이 협회를 향해 던진 가장 강력한 수준의 경고 메시지로 해석된다.

 


현지 분위기 역시 박 위원의 발언만큼이나 냉랭하다. 몬테레이 현장을 찾은 붉은 악마 응원단은 경기 종료 후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를 향해 야유를 보냈으며, 일부 팬들은 협회 수뇌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자력 진출의 기회를 허망하게 날려버린 선수들은 고개를 숙인 채 공동취재구역을 빠져나갔고, 홍명보 감독은 전술적 패착에 대한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박지성 위원의 말대로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에서도 어떠한 희망도 찾을 수 없었던 90분이었다.

 

이제 한국 축구는 타 조의 상황을 지켜보며 32강 진출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가야 하는 굴욕적인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설령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하더라도 이번 참사로 입은 신뢰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전망이다. 박지성 위원이 던진 쓴소리는 단순히 한 경기의 패배를 꾸짖는 것이 아니라, 벼랑 끝에 선 한국 축구가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뼈를 깎는 쇄신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축구의 시계가 다시 2014년에 멈춰버린 가운데, 협회와 대표팀이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지 전 국민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일곱 왕자 성불한 칠불사, 영지의 전설

막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약 5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이 거목은 최치원이 꽂은 지팡이에서 싹이 돋았다는 신비로운 전설을 품고 있다. 마을을 넉넉히 감싸 안은 웅장한 가지는 천년 전 선비가 꿈꿨던 이상향의 입구를 지키는 파수꾼처럼 당당하게 서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계곡의 물길을 따라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물살이 빚어낸 기암괴석 사이에 '세이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최치원이 속세의 번잡한 소리에 오염된 귀를 씻어냈다는 이곳은, 지금도 맑은 물줄기가 끊임없이 흐르며 세속의 때를 벗겨내려는 이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전한다. 수정처럼 투명한 대성계곡의 수면 위로 비치는 숲의 그림자는 최치원이 지향했던 무욕의 삶이 어떤 풍경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자연과 역사가 교차하는 이 공간은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성찰의 장소로 기능한다.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칠불사는 화려한 단청보다 깊은 적막이 먼저 다가오는 수행도량이다. 가야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했다는 설화에서 유래한 이 절은 지리산 반야봉 아래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다. 어머니 허황옥 왕비가 아들들을 그리워하며 만들었다는 연못 '영지'에는 성불한 왕자들의 모습이 비쳤다는 애틋한 이야기가 흐른다. 전설은 세월을 견디며 이끼 낀 석축과 고요한 경내 곳곳에 스며들어 천년고찰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완성한다.칠불사의 명성은 독특한 온돌 구조를 지닌 '아자방'에서 정점을 찍는다. 한 번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온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이 선방은 한국 불교 수행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산이다. 조선 후기의 다성 초의선사 역시 이곳에 머물며 참선과 차를 하나로 보는 '선다일여'의 정신을 다듬었다. 아자방의 온기는 단순히 육신의 추위를 녹이는 것을 넘어, 혹독한 정진을 이어갔던 수행자들의 뜨거운 구도열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해주는 매개체가 된다.경내를 천천히 거니는 스님들의 포행은 칠불사의 적막을 더욱 깊고 경건하게 만든다. 참선 후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이 느린 발걸음은 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 계곡물 소리와 어우러져 하나의 수행 예술을 연출한다. 인위적인 장식 없이 자연의 순리대로 배치된 전각들은 지리산의 사계절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방문객들은 말없이 이어지는 스님들의 행선(行禪)을 지켜보며 도심에서 잊고 지냈던 내면의 고요를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대성계곡의 맑은 물줄기에서 시작해 칠불사의 아자방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단순한 탐방로가 아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명상의 통로다. 최치원이 귀를 씻었던 물소리는 여전히 계곡을 울리고, 일곱 왕자가 깨달음을 얻었던 고요는 칠불사 경내에 가득하다. 역사와 전설, 그리고 수행의 향기가 한데 어우러진 지리산의 이 길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춰 서서 삶의 근원적인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