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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인 스승' 아기레, 멕시코와 작별 인사

 개최국의 자존심을 걸고 북중미 월드컵에 나섰던 멕시코 축구 대표팀의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이 16강 탈락과 함께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멕시코는 지난 6일 멕시코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16강전에서 치열한 접전 끝에 2대3으로 패하며 대회를 마감했다. 아기레 감독은 경기 종료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미 예고했던 대로 사퇴 의사를 공식화하며, 자신의 세 번째 멕시코 대표팀 사령탑 임기를 마무리했다. 홈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 속에 8강 진출을 노렸던 도전은 멈췄지만, 아기레 감독은 결과보다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며 담담하게 작별을 고했다.

 

이날 경기는 잉글랜드의 주드 벨링엄에게 연속골을 허용하며 초반부터 어렵게 흘러갔다. 멕시코는 훌리안 퀴뇨네스의 만회골로 추격의 불씨를 살렸고, 후반전 상대 선수의 퇴장으로 수적 우위까지 점하며 역전의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해리 케인에게 페널티킥 골을 내주며 다시 격차가 벌어졌고, 경기 막판 라울 히메네스가 추격골을 터뜨렸음에도 끝내 동점을 만들지는 못했다. 패배의 아픔은 컸지만 아기레 감독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명승부를 펼친 선수들을 탓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경기장을 떠나라고 격려했다.

 


아기레 감독은 이번 대회를 통해 멕시코 축구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되찾았다는 점에 큰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선수들이 보여준 헌신 덕분에 재임 기간 내내 행복했음을 고백하며, 비록 승리로 작별 인사를 전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팀의 미래는 밝다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자신의 뒤를 이을 차기 사령탑으로 유력한 라파 마르케스 코치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보였다. 마르케스가 충분한 능력을 갖췄으며 자신보다 더 훌륭하게 팀을 이끌 준비가 되었다는 덕담을 건네며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예고했다.

 

차기 감독으로 낙점된 라파 마르케스는 멕시코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선수 시절 주장으로서 월드컵 5회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이번 대회에서는 아기레 감독을 보좌하며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쌓아왔다. 아기레 감독은 마르케스가 팀의 미래를 이끌 적임자임을 강조하며 그에게 행운을 빌었다. 멕시코 축구협회 역시 아기레의 경험과 마르케스의 젊은 리더십이 조화를 이룬 이번 대회의 성과를 바탕으로, 마르케스 체제에서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축구 팬들에게 아기레 감독은 파리 생제르맹에서 활약 중인 이강인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과거 스페인 마요르카 시절 이강인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주전으로 기용하며 그의 성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당시 아기레 감독은 이강인을 '내 아들'이라 부를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쏟았으며, 그의 지도 아래 이강인은 리그 정상급 미드필더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아기레 감독의 사퇴 소식에 한국 팬들이 남다른 아쉬움을 표하는 이유도 이강인과 맺었던 특별한 사제 관계 때문이다.

 

아기레 감독은 잉글랜드라는 강호를 상대로 마지막까지 개최국의 저력을 보여주며 멕시코 축구사에 또 하나의 발자취를 남겼다. 비록 8강 진출이라는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는 팀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유능한 후계자를 세우는 등 감독으로서의 소임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멕시코 축구는 이제 아기레가 닦아놓은 토대 위에서 라파 마르케스라는 새로운 선장을 맞이하게 됐다. 아기레 감독은 뜨거운 박수를 뒤로하고 자부심 가득한 모습으로 멕시코 대표팀과의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일곱 왕자 성불한 칠불사, 영지의 전설

막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약 5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이 거목은 최치원이 꽂은 지팡이에서 싹이 돋았다는 신비로운 전설을 품고 있다. 마을을 넉넉히 감싸 안은 웅장한 가지는 천년 전 선비가 꿈꿨던 이상향의 입구를 지키는 파수꾼처럼 당당하게 서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계곡의 물길을 따라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물살이 빚어낸 기암괴석 사이에 '세이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최치원이 속세의 번잡한 소리에 오염된 귀를 씻어냈다는 이곳은, 지금도 맑은 물줄기가 끊임없이 흐르며 세속의 때를 벗겨내려는 이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전한다. 수정처럼 투명한 대성계곡의 수면 위로 비치는 숲의 그림자는 최치원이 지향했던 무욕의 삶이 어떤 풍경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자연과 역사가 교차하는 이 공간은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성찰의 장소로 기능한다.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칠불사는 화려한 단청보다 깊은 적막이 먼저 다가오는 수행도량이다. 가야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했다는 설화에서 유래한 이 절은 지리산 반야봉 아래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다. 어머니 허황옥 왕비가 아들들을 그리워하며 만들었다는 연못 '영지'에는 성불한 왕자들의 모습이 비쳤다는 애틋한 이야기가 흐른다. 전설은 세월을 견디며 이끼 낀 석축과 고요한 경내 곳곳에 스며들어 천년고찰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완성한다.칠불사의 명성은 독특한 온돌 구조를 지닌 '아자방'에서 정점을 찍는다. 한 번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온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이 선방은 한국 불교 수행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산이다. 조선 후기의 다성 초의선사 역시 이곳에 머물며 참선과 차를 하나로 보는 '선다일여'의 정신을 다듬었다. 아자방의 온기는 단순히 육신의 추위를 녹이는 것을 넘어, 혹독한 정진을 이어갔던 수행자들의 뜨거운 구도열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해주는 매개체가 된다.경내를 천천히 거니는 스님들의 포행은 칠불사의 적막을 더욱 깊고 경건하게 만든다. 참선 후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이 느린 발걸음은 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 계곡물 소리와 어우러져 하나의 수행 예술을 연출한다. 인위적인 장식 없이 자연의 순리대로 배치된 전각들은 지리산의 사계절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방문객들은 말없이 이어지는 스님들의 행선(行禪)을 지켜보며 도심에서 잊고 지냈던 내면의 고요를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대성계곡의 맑은 물줄기에서 시작해 칠불사의 아자방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단순한 탐방로가 아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명상의 통로다. 최치원이 귀를 씻었던 물소리는 여전히 계곡을 울리고, 일곱 왕자가 깨달음을 얻었던 고요는 칠불사 경내에 가득하다. 역사와 전설, 그리고 수행의 향기가 한데 어우러진 지리산의 이 길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춰 서서 삶의 근원적인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