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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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최전방 방어기지, 팔거산성…그 안에 숨겨진 ‘건축의 비밀’

 대구 팔거산성에서 신라 석축성벽의 초기 양식이 발견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13일, 대구광역시 북구 함지산 정상부에 위치한 팔거산성 발굴조사 과정에서 신라 시대 최초의 석축성벽 건축 양식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팔거산성은 신라가 삼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던 5세기 이후, 수도 서라벌의 서쪽 최전방 방어선 구축을 위해 전략적으로 축조한 산성이다. 그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3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된 바 있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팔거산성은 단순한 방어 기지를 넘어, 신라의 발전된 토목 기술과 국방 시스템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임이 다시 한번 입증되었다.

 

이번 발굴의 핵심 성과는 체성과 곡성 등의 유구 확인에 있다. 특히 체성은 최소 두 차례에 걸쳐 축조되었으며, 신라 시대 성벽 위에 고려 시대 성벽이 겹쳐 쌓인 중복 구조를 하고 있어 시대별 축성 기술의 변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최초 축조된 체성은 하부를 한쪽 면만 쌓는 편축식으로, 상부를 양쪽 면을 함께 쌓아 올리는 협축식으로 만들어졌다. 외벽 상부와 내벽을 비슷한 높이에서 서로 등지게 쌓는 이러한 협축식 성벽은 신라 석축성벽의 초기 형태로, 당시 신라인들의 뛰어난 건축 기술과 지형 활용 능력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이는 신라의 성곽 축조 기술이 단순히 돌을 쌓는 수준을 넘어, 지형의 특성을 고려하고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고도의 공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발굴된 성벽의 규모 또한 주목할 만하다. 외벽 하부는 길이 46m, 최고 높이 6.3m에 달하며, 내벽은 길이 55m, 최고 높이 2.4m로 남아있다. 특히 내벽은 중앙부의 두께가 14m에 이르지만, 양쪽 끝으로 갈수록 7m로 점차 줄어드는 독특한 형태를 띤다. 이는 골짜기에 위치한 성벽의 구조적 안정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중앙부를 의도적으로 두껍게 쌓아 올린 것으로, 당시 신라인들의 치밀한 설계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구조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성벽을 더욱 견고하게 보호하고, 장기적인 방어 전략을 가능하게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체성 외벽과 내벽에서는 2.3~2.7m 간격으로 일정한 세로 구획선 14개가 발견되어, 당시 성벽 축조가 분업화된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특정 구간에서는 같은 색상의 자색이암만을 사용하여 축조한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이는 하나의 집단이 채석부터 축조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책임 시공’ 방식으로 공사가 진행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분업 시스템은 대규모 토목 공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공사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발굴 성과를 국민과 공유하기 위해 13일 오후 2시, 발굴 현장에서 설명회를 개최하며, 별도의 신청 없이 누구나 참여하여 신라의 위대한 건축 기술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맥도날드 저격'하며 태어난 그 운동, 미국 한복판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다

임의 중심에 미국 캘리포니아의 주도, 새크라멘토가 떠오르고 있다. ‘성스러운 강’이라는 이름의 이 도시는 ‘팜 투 포크(Farm-to-Fork, 농장에서 식탁까지)’라는 슬로건을 도시의 정체성으로 내걸었다. 1986년 이탈리아에서 맥도날드에 대항하며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의 정신을 미국 서부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그 결과는 놀라워서, 슬로푸드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테라 마드레(어머니의 땅)’ 축제가 사상 처음으로 이탈리아 밖인 바로 이곳 새크라멘토에서 열리는 영광으로 이어졌다. 이는 새크라멘토가 단순한 미식 도시를 넘어, 패스트푸드로 상징되는 현대 문명에 맞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세계적인 구심점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다.새크라멘토가 이처럼 ‘미국의 팜 투 포크 수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1852년의 대홍수가 시에라산맥의 비옥한 퇴적물을 센트럴밸리 전역으로 실어 날랐고, 새크라멘토강과 아메리카강이 만나는 풍부한 수량, 강렬한 햇살과 서늘한 저녁 기후가 더해져 농사를 위한 최적의 땅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도시 반경 100km 안에서 거의 모든 식자재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요리사의 천국’이 탄생했다. 전 세계 아몬드 생산량의 90% 이상, 세계 3대 자포니카 쌀 생산지, 미국 최대 캐비어 양식장이 이곳에 있으며, 토마토, 올리브, 와인 등도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이다. 파머스마켓에 들어서는 순간, 숯불 위에서 구워지는 패티와 갓 구운 빵, 신선한 농작물이 뒤섞여 뿜어내는 풍요로운 향기는 이 도시가 가진 땅의 힘을 오감으로 느끼게 한다.이처럼 거대한 농지가 세계적인 미식 도시로 탈바꿈한 데에는 몇몇 선구자들의 ‘가벼운 우연’과 ‘열정적인 모험’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이민 2세대 농부였던 레이 융이 우연히 얻은 둥근 토마토 씨앗을 심었다가 밭 전체를 뒤덮자, 처리를 위해 현지 레스토랑에 직접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 ‘팜(농장)’에서 ‘포크(식탁)’로 이어지는 직거래 문화의 시초가 되었다. 여기에 ‘요리계의 인디애나 존스’로 불린 식료품점 아들 대릴 코르티가 가세했다. 그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누비며 당시 미국에는 생소했던 파르메산 치즈, 트러플, 발사믹 식초 등을 들여와 새크라멘토의 식탁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이들의 노력이 씨앗이 되어 2012년, 케빈 존슨 전 시장은 새크라멘토를 ‘미국 팜 투 포크 운동의 수도’로 공식 선언하기에 이르렀다.새크라멘토의 철학은 결국 ‘시간의 회복’으로 귀결된다. 세계적인 셰프 엘리자베스 포크너는 테라 마드레 행사에서 “내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패스트푸드”라며, 아이들의 ‘인앤아웃 햄버거’ 타령에 씁쓸해했다. 그녀에게 패스트푸드와의 싸움은 곧 자신의 요리를 지속하게 하는 동력이다. 포크너는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현지 농부와 어부를 직접 만나 제철 식재료를 확인하는 것을 요리의 첫걸음으로 삼는다. 이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기술을 넘어, 생산자와의 관계를 맺고 자연의 리듬을 존중하는 슬로푸드의 핵심 가치와 맞닿아 있다. 멕시코계, 아프가니스탄계 이민자들이 기른 작물이 스페인 음식에 매료된 요리사의 손에서 파에야로 재탄생하는 새크라멘토의 식탁은, 결국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촘촘히 엮여 만들어내는 ‘인간적인 시간’ 그 자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