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스트

문화포스트

439년, 백제는 여기서 싸웠다…'최고(最古) 목간'이 폭로한 1600년 전 전쟁의 진실

 한국 고대사의 기록을 100년 이상 앞당길 수 있는 획기적인 유물이 경기도 양주의 한 산성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양주시와 기호문화유산연구원은 양주 대모산성 내 집수 시설을 발굴하던 중, 약 1600년 전인 5세기경 백제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간 4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목간들이 발견된 '백제 문화층'은 고구려 장수왕이 한성을 함락시키기 이전인 475년 이전의 지층으로, 당시의 생활상과 역사적 사실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타임캡슐과도 같다. 특히 한 목간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묘년(己卯年)'이라는 글자는 이 유물이 439년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하며, 만약 이것이 사실로 확정될 경우 기존에 가장 오래된 목간으로 알려졌던 서울 몽촌토성 출토품보다도 100년가량 앞서는, 현존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역사에 기록될 전망이다.

 

이번 발굴이 학계에 던지는 충격파는 단순히 연대를 끌어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함께 출토된 또 다른 목간에는 '금물노(今勿奴)'라는 지명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오늘날의 충북 진천 일대로 비정되는 곳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금물노'가 주로 고구려와 관련된 지명으로 알려져 왔다는 점이다. 고구려의 지명이 명백한 백제의 문화층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5세기 중반 양주 일대가 단순한 백제의 영토가 아니라,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한 백제와 고구려의 군사적, 정치적 힘이 첨예하게 맞부딪히던 최전선이었음을 증명하는 강력한 물증이다. 이는 문헌 기록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던 두 나라의 치열했던 각축전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하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땅속에서 나온 셈이다.

 


발견된 목간들은 당시의 군사적 긴장감뿐만 아니라, 성 내부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의 정신세계까지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단서를 품고 있었다. '시(尸)'라는 글자 아래 '천(天)', '금(金)' 등 20여 개의 글자가 적힌 목간이 대표적이다. '시(尸)'는 주검이나 신체를 의미하는 글자로, 그 자체만으로도 여러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더욱이 이 목간 주변에서 점을 치는 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뼈와 관련 도구들이 함께 발견되면서, 이곳 대모산성 내부에서 단순한 주둔을 넘어 국가의 안녕이나 전쟁의 승패를 기원하는 등 모종의 제의적 행위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추정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는 산성이 단순한 군사 시설을 넘어, 당시 사람들의 믿음과 의례가 행해지던 중요한 정신적 공간이었을 가능성을 열어준다.

 

결론적으로 양주 대모산성에서 발견된 4점의 목간은 한국 고대사 연구의 지평을 뒤흔들 만한 잠재력을 지닌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현존 가장 오래된 문자 자료의 등장을 예고하는 동시에, 백제와 고구려의 영토 분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고대인들의 정신문화까지 복원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양주시와 연구원은 오는 28일 발굴 현장에서 설명회를 열어 이번에 발견된 목간의 실물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현재까지의 조사 성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1600년의 잠에서 깨어난 작은 나뭇조각들이 앞으로 어떤 거대한 역사의 비밀을 우리에게 들려줄지 학계와 대중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맥도날드 저격'하며 태어난 그 운동, 미국 한복판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다

임의 중심에 미국 캘리포니아의 주도, 새크라멘토가 떠오르고 있다. ‘성스러운 강’이라는 이름의 이 도시는 ‘팜 투 포크(Farm-to-Fork, 농장에서 식탁까지)’라는 슬로건을 도시의 정체성으로 내걸었다. 1986년 이탈리아에서 맥도날드에 대항하며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의 정신을 미국 서부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그 결과는 놀라워서, 슬로푸드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테라 마드레(어머니의 땅)’ 축제가 사상 처음으로 이탈리아 밖인 바로 이곳 새크라멘토에서 열리는 영광으로 이어졌다. 이는 새크라멘토가 단순한 미식 도시를 넘어, 패스트푸드로 상징되는 현대 문명에 맞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세계적인 구심점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다.새크라멘토가 이처럼 ‘미국의 팜 투 포크 수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1852년의 대홍수가 시에라산맥의 비옥한 퇴적물을 센트럴밸리 전역으로 실어 날랐고, 새크라멘토강과 아메리카강이 만나는 풍부한 수량, 강렬한 햇살과 서늘한 저녁 기후가 더해져 농사를 위한 최적의 땅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도시 반경 100km 안에서 거의 모든 식자재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요리사의 천국’이 탄생했다. 전 세계 아몬드 생산량의 90% 이상, 세계 3대 자포니카 쌀 생산지, 미국 최대 캐비어 양식장이 이곳에 있으며, 토마토, 올리브, 와인 등도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이다. 파머스마켓에 들어서는 순간, 숯불 위에서 구워지는 패티와 갓 구운 빵, 신선한 농작물이 뒤섞여 뿜어내는 풍요로운 향기는 이 도시가 가진 땅의 힘을 오감으로 느끼게 한다.이처럼 거대한 농지가 세계적인 미식 도시로 탈바꿈한 데에는 몇몇 선구자들의 ‘가벼운 우연’과 ‘열정적인 모험’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이민 2세대 농부였던 레이 융이 우연히 얻은 둥근 토마토 씨앗을 심었다가 밭 전체를 뒤덮자, 처리를 위해 현지 레스토랑에 직접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 ‘팜(농장)’에서 ‘포크(식탁)’로 이어지는 직거래 문화의 시초가 되었다. 여기에 ‘요리계의 인디애나 존스’로 불린 식료품점 아들 대릴 코르티가 가세했다. 그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누비며 당시 미국에는 생소했던 파르메산 치즈, 트러플, 발사믹 식초 등을 들여와 새크라멘토의 식탁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이들의 노력이 씨앗이 되어 2012년, 케빈 존슨 전 시장은 새크라멘토를 ‘미국 팜 투 포크 운동의 수도’로 공식 선언하기에 이르렀다.새크라멘토의 철학은 결국 ‘시간의 회복’으로 귀결된다. 세계적인 셰프 엘리자베스 포크너는 테라 마드레 행사에서 “내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패스트푸드”라며, 아이들의 ‘인앤아웃 햄버거’ 타령에 씁쓸해했다. 그녀에게 패스트푸드와의 싸움은 곧 자신의 요리를 지속하게 하는 동력이다. 포크너는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현지 농부와 어부를 직접 만나 제철 식재료를 확인하는 것을 요리의 첫걸음으로 삼는다. 이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기술을 넘어, 생산자와의 관계를 맺고 자연의 리듬을 존중하는 슬로푸드의 핵심 가치와 맞닿아 있다. 멕시코계, 아프가니스탄계 이민자들이 기른 작물이 스페인 음식에 매료된 요리사의 손에서 파에야로 재탄생하는 새크라멘토의 식탁은, 결국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촘촘히 엮여 만들어내는 ‘인간적인 시간’ 그 자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