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스트

문화포스트

"여성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국가 수준이 보인다"…세계적 작가의 작심 발언

 기억에서 잊히는 것이야말로 가장 끔찍한 죽음이라고 믿는 작가, 지난해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거머쥔 카멜 다우드가 한국을 찾아 '제도화된 망각'에 저항하는 문학의 힘을 역설했다. 그의 수상작 '후리(Houris)'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국가가 폭력적으로 지우려 하는 역사를 기록하고 증언하는 것만이 비극의 반복을 막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소설 '후리'는 1990년대 정부와 이슬람주의 세력의 충돌로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알제리 내전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으로, 알제리 정부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는 등 출간 과정에서부터 거센 탄압을 받았다.

 

작품은 내전의 참상 속에서 모든 것을 잃은 한 여성을 통해 억압된 기억을 되살린다. 주인공 '오브'는 대학살의 유일한 생존자이지만, 후두를 심하게 다쳐 목소리를 잃고 튜브로 숨을 쉬는 인물이다. 그녀는 뱃속의 딸에게 '후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오직 내면의 목소리로 말을 건네며 여성의 삶 자체가 고통인 이 땅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끊임없이 고뇌한다. 작가는 이처럼 말을 할 수 없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언급 자체가 헌법으로 금지된 알제리 내전의 비극과 침묵을 강요당하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프랑스로 건너가 이 작품을 출간했으며, 이는 망각을 강요하는 국가 폭력에 대한 문학적 저항이었다.

 


카멜 다우드는 알제리와 한국이 모두 식민 지배의 아픈 역사를 가졌다는 공통점에 주목했다. 다만 그는 한국이 식민 지배 국가와의 관계 설정이나 사과, 진실 규명 문제에 있어 전혀 다른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고 밝혔다. 비슷한 역사적 트라우마를 가졌지만, 민주주의를 통해 이를 극복해나가는 한국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는 것이다. 한편,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1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연사로 초청된 그는, 기억과 개인의 자유라는 공통된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한강 작가와 비교되는 것을 매우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히 밝히며, "한 국가가 여성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그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혹은 나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소설의 제목 '후리'는 본래 이슬람 전통에서 천국에 간 남성 신자에게 주어진다고 믿는 아름다운 처녀를 뜻하지만, 작가는 이 개념을 전복시켜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 즉 '진짜 후리들'의 삶과 고통을 조명한다. 그는 '후리'가 절망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 작품은 전쟁과 죽음의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고 다시 '나' 자신으로, 한 명의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는 "복수의 사슬은 멈춰야 하지만, 면죄와 망각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가해자의 용서 이전에 진실 규명과 역사 교육이 선행되어야 함을 분명히 했다. 그는 한국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고통과 죽음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영하 추위에도 200미터 줄 선다…지금 경주에 대체 무슨 일이?

이 있다. 당초 지난 12월 14일까지 예정되었던 전시는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내년 2월 22일까지 연장 운영에 들어갔을 정도다. APEC 행사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주말 오전 박물관 앞은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200미터가 넘는 긴 대기 줄로 장사진을 이룬다. 온라인 예약분이 일찌감치 마감된 탓에 현장 티켓을 구하려는 이들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온 가족 단위 관람객부터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은 어묵 국물로 몸을 녹이며 몇 시간의 기다림도 마다하지 않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이번 전시가 이토록 뜨거운 관심을 받는 이유는 신라 금관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지 104년 만에, 현존하는 6점의 금관 전체가 사상 최초로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교동금관부터 서봉총, 금관총, 금령총, 황남대총, 천마총 금관까지, 각기 다른 사연을 품은 여섯 개의 금관이 한 공간에서 황금빛 향연을 펼친다. 전시장 내부는 오직 금관의 찬란한 빛만이 돋보이도록 온통 검은색으로 꾸며졌으며, 관람객들은 약 1500년 전 신라 마립간의 절대적인 권력과 위엄, 그리고 당대 최고의 예술성을 눈앞에서 마주하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특히 각 금관의 사슴뿔 장식, 나뭇가지 모양 세움 장식, 곱은옥과 수많은 달개 장식 등을 확대해 비교 관찰할 수 있는 비디오 자료는, 장인의 혼이 담긴 수작업의 위대함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며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금관전의 폭발적인 인기는 국립경주박물관 전체에 대한 재발견으로 이어지고 있다. 몇 시간씩 남는 대기 시간 동안 관람객들은 자연스럽게 신라역사관과 미술관 등 상설 전시관으로 발길을 옮기며 박물관 구석구석을 탐방한다. 특히 '신라(新羅)'라는 국호가 '덕업을 날로 새롭게 하여 사방을 아우른다(德業日新 網羅四方)'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은 찬란했던 고대 국가의 정체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투박하지만 실용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선사시대 토기부터, 넉넉한 미소로 '신라의 미소'라 불리는 얼굴 무늬 수막새, 정교한 갑옷 문양이 감탄을 자아내는 기마인물형토기까지, 오래된 것들이 품은 가치와 아름다움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또한 최근 한미, 한중 정상회담이 열렸던 장소가 일반에 공개되면서, 역사적인 공간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이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금관전에서 시작된 열기는 박물관 담장을 넘어 경주 시내 전역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관람객들은 첨성대와 깊은 갈색으로 물든 계림 숲길을 거닐고, 반월성 해자를 따라 고즈넉한 풍경을 즐기며 신라의 정취에 흠뻑 빠져든다. 나아가 한국화의 거장 박대성 화백의 작품이 기증되어 건립된 '솔거미술관' 역시 필수 코스로 떠올랐다. 미술관 통창이 그대로 액자가 되어 바깥의 연못과 자연 경관을 한 폭의 그림처럼 담아내는 포토존은 SNS에서 이미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APEC 행사를 계기로 촉발된 경주에 대한 관심은, 수도권 등 원거리 방문객들을 끌어들이고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자랑스러워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며 도시 전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