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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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제대로 도서전, '돈맛' 본 도서전 거부

 서울 용산구 노들섬 노들라운지가 책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25일 오후 4시, 제1회 '서울 제대로 도서전'이 개막하자마자 200여 명의 인파가 쏟아져 들어오며 장내를 메웠다. 안전을 위해 도입한 사전 예약 시스템은 단 10분 만에 준비된 수량이 모두 매진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현장을 찾은 이들은 단순히 책을 사러 온 손님을 넘어, 위기에 처한 출판 생태계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모인 연대자들이었다.

 

이번 행사는 국내 최대 규모인 서울국제도서전의 변질에 항의하는 출판인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한 대안적 축제다. 전국 각지의 출판사와 동네 서점, 작가 등 51개 팀이 뜻을 모았고 수십 명의 자원봉사자가 힘을 보탰다. 이들은 70년 가까이 공적 자산으로 여겨졌던 서울국제도서전이 최근 주식회사 체제로 전환되면서 이윤만을 쫓는 영리 사업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부스 비용이 단기간에 두 배 가까이 치솟으면서 자금력이 부족한 소형 출판사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점이 갈등의 핵심이다.

 


현장에서 만난 출판인들은 대형 자본 위주로 재편된 기존 도서전의 문법을 거부했다. 제대로 도서전은 모든 참가 팀에게 동일한 크기의 부스를 제공하고 위치 또한 무작위로 배정해 공간이 주는 권위와 위계를 없앴다. 화려한 굿즈나 자극적인 이벤트 대신 서가에는 어린이, 여성, 환경, 인권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책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50만 원이라는 합리적인 참가비는 다양성을 지향하는 작은 출판사들이 부담 없이 독자와 만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독자들의 반응 역시 긍정적이다. 대형 전시장 특유의 혼잡함과 상업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책을 만든 사람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혔다. 현장에는 자신이 가져온 책을 낭독하거나 작가와 직접 소통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독서 본연의 즐거움을 극대화했다. 또한 비닐 봉투 대신 시민들이 기증한 에코백을 사용하는 등 환경 보호를 실천하는 모습도 기존의 대규모 상업 행사와는 차별화된 지점이었다.

 


지역 출판계와 작가 단체도 목소리를 보탰다. 광주에서 올라온 서점 운영자는 유통 체계의 일원으로서 출판인들과 행동을 같이하기 위해 참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작가노조 측 역시 특정 단체가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구조를 타파하고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출판업이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직결되는 만큼, 도서전 운영에 있어 공공성이 최우선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제대로 도서전은 26일까지 사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막을 내린다. 주최 측은 이번 행사의 흥행을 반기면서도, 역설적으로 이 도서전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기를 희망하고 있다. 대안 도서전이 열려야만 했던 원인인 서울국제도서전의 사유화 문제가 해결되어 다시 모두가 화합하는 공공의 축제로 돌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출판인들은 이번 행사를 통해 확인된 독자들의 지지를 동력 삼아 도서전 운영 구조 개선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이어갈 방침이다.

 

일곱 왕자 성불한 칠불사, 영지의 전설

막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약 5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이 거목은 최치원이 꽂은 지팡이에서 싹이 돋았다는 신비로운 전설을 품고 있다. 마을을 넉넉히 감싸 안은 웅장한 가지는 천년 전 선비가 꿈꿨던 이상향의 입구를 지키는 파수꾼처럼 당당하게 서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계곡의 물길을 따라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물살이 빚어낸 기암괴석 사이에 '세이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최치원이 속세의 번잡한 소리에 오염된 귀를 씻어냈다는 이곳은, 지금도 맑은 물줄기가 끊임없이 흐르며 세속의 때를 벗겨내려는 이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전한다. 수정처럼 투명한 대성계곡의 수면 위로 비치는 숲의 그림자는 최치원이 지향했던 무욕의 삶이 어떤 풍경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자연과 역사가 교차하는 이 공간은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성찰의 장소로 기능한다.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칠불사는 화려한 단청보다 깊은 적막이 먼저 다가오는 수행도량이다. 가야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했다는 설화에서 유래한 이 절은 지리산 반야봉 아래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다. 어머니 허황옥 왕비가 아들들을 그리워하며 만들었다는 연못 '영지'에는 성불한 왕자들의 모습이 비쳤다는 애틋한 이야기가 흐른다. 전설은 세월을 견디며 이끼 낀 석축과 고요한 경내 곳곳에 스며들어 천년고찰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완성한다.칠불사의 명성은 독특한 온돌 구조를 지닌 '아자방'에서 정점을 찍는다. 한 번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온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이 선방은 한국 불교 수행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산이다. 조선 후기의 다성 초의선사 역시 이곳에 머물며 참선과 차를 하나로 보는 '선다일여'의 정신을 다듬었다. 아자방의 온기는 단순히 육신의 추위를 녹이는 것을 넘어, 혹독한 정진을 이어갔던 수행자들의 뜨거운 구도열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해주는 매개체가 된다.경내를 천천히 거니는 스님들의 포행은 칠불사의 적막을 더욱 깊고 경건하게 만든다. 참선 후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이 느린 발걸음은 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 계곡물 소리와 어우러져 하나의 수행 예술을 연출한다. 인위적인 장식 없이 자연의 순리대로 배치된 전각들은 지리산의 사계절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방문객들은 말없이 이어지는 스님들의 행선(行禪)을 지켜보며 도심에서 잊고 지냈던 내면의 고요를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대성계곡의 맑은 물줄기에서 시작해 칠불사의 아자방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단순한 탐방로가 아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명상의 통로다. 최치원이 귀를 씻었던 물소리는 여전히 계곡을 울리고, 일곱 왕자가 깨달음을 얻었던 고요는 칠불사 경내에 가득하다. 역사와 전설, 그리고 수행의 향기가 한데 어우러진 지리산의 이 길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춰 서서 삶의 근원적인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