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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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원령공주', 가부키로 도쿄서 부활

 일본의 전통 공연 예술인 가부키가 스튜디오 지브리의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를 품고 현대적인 변신을 꾀한다. 일본 엔터테인먼트 기업 쇼치쿠는 7월 3일부터 8월 23일까지 도쿄 신바시 엔부조에서 슈퍼 가부키 '모노노케 히메'를 공연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1997년 개봉해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던 원작의 '인간과 자연의 대립'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가부키 특유의 화려한 미학으로 재해석한 이번 무대는, 전통 예술의 높은 문턱을 낮추고 젊은 층과 외국인 관객까지 흡수하려는 야심 찬 기획이다.

 

이번 공연의 핵심인 '슈퍼 가부키'는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현대적 가부키 장르로, 고전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파격적인 무대 효과와 빠른 전개를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배우가 와이어에 의지해 객석 위를 날아다니는 '주노리' 기법이나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는 '하야가와리' 같은 역동적인 연출은 관객들에게 마치 한 편의 블록버스터 뮤지컬을 보는 듯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특히 어려운 고어 대신 현대어 대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가부키에 익숙하지 않은 초심자들도 극의 흐름을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주인공 아시타카 역을 맡은 이치카와 단고는 이번 무대에서 사슴 신인 '시시신'까지 1인 2역을 소화하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는 개막 전 인터뷰를 통해 단순히 원작을 무대로 옮기는 수준을 넘어, 가부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입체적인 연출로 새로운 몰입감을 선사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원령공주 '산' 역의 나카무라 이치타로 역시 기존 가부키의 정적인 여성 배역 이미지를 탈피해 격렬한 검술 액션을 선보이며, 야생의 생명력을 지닌 원작 캐릭터를 무대 위에 생생하게 구현해냈다.

 

무대 위에서는 애니메이션 속 대규모 전투 장면을 연상시키는 군무와 화려한 조명, 입체적인 세트 전환이 쉼 없이 이어진다. 이는 가부키가 지닌 고전적 발성과 분장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의 액션과 음악을 결합해 장르 간의 경계를 허문 결과물이다. 제작사인 쇼치쿠 측은 이번 공연이 지브리 팬들에게는 익숙한 서사의 새로운 변주를, 가부키 팬들에게는 전통의 현대적 확장을 경험하게 하는 특별한 자리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일본 문화계에서는 최근 이처럼 유명 IP를 전통 예술과 결합하는 시도가 하나의 주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가부키화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연극 무대화가 잇따라 성공을 거두며 전통 예술의 생명력을 연장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이번 '모노노케 히메'는 원작의 인지도가 워낙 높은 만큼, 일본어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시각적인 즐거움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여행 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슈퍼 가부키의 개막은 전통이 어떻게 현대와 호흡하며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거대한 사슴 신이 무대 위를 장악하고 배우들이 허공을 가르는 광경은 가부키가 더 이상 낡은 유산이 아님을 증명한다. 지브리의 철학적 서사와 가부키의 기술적 화려함이 만난 이번 공연은 올여름 도쿄를 찾는 전 세계 관객들에게 일본 문화의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목격하는 강렬한 경험을 선사할 전망이다. 아시타카의 여정이 시작된 오늘, 신바시 엔부조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일곱 왕자 성불한 칠불사, 영지의 전설

막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약 5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이 거목은 최치원이 꽂은 지팡이에서 싹이 돋았다는 신비로운 전설을 품고 있다. 마을을 넉넉히 감싸 안은 웅장한 가지는 천년 전 선비가 꿈꿨던 이상향의 입구를 지키는 파수꾼처럼 당당하게 서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계곡의 물길을 따라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물살이 빚어낸 기암괴석 사이에 '세이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최치원이 속세의 번잡한 소리에 오염된 귀를 씻어냈다는 이곳은, 지금도 맑은 물줄기가 끊임없이 흐르며 세속의 때를 벗겨내려는 이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전한다. 수정처럼 투명한 대성계곡의 수면 위로 비치는 숲의 그림자는 최치원이 지향했던 무욕의 삶이 어떤 풍경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자연과 역사가 교차하는 이 공간은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성찰의 장소로 기능한다.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칠불사는 화려한 단청보다 깊은 적막이 먼저 다가오는 수행도량이다. 가야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했다는 설화에서 유래한 이 절은 지리산 반야봉 아래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다. 어머니 허황옥 왕비가 아들들을 그리워하며 만들었다는 연못 '영지'에는 성불한 왕자들의 모습이 비쳤다는 애틋한 이야기가 흐른다. 전설은 세월을 견디며 이끼 낀 석축과 고요한 경내 곳곳에 스며들어 천년고찰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완성한다.칠불사의 명성은 독특한 온돌 구조를 지닌 '아자방'에서 정점을 찍는다. 한 번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온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이 선방은 한국 불교 수행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산이다. 조선 후기의 다성 초의선사 역시 이곳에 머물며 참선과 차를 하나로 보는 '선다일여'의 정신을 다듬었다. 아자방의 온기는 단순히 육신의 추위를 녹이는 것을 넘어, 혹독한 정진을 이어갔던 수행자들의 뜨거운 구도열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해주는 매개체가 된다.경내를 천천히 거니는 스님들의 포행은 칠불사의 적막을 더욱 깊고 경건하게 만든다. 참선 후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이 느린 발걸음은 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 계곡물 소리와 어우러져 하나의 수행 예술을 연출한다. 인위적인 장식 없이 자연의 순리대로 배치된 전각들은 지리산의 사계절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방문객들은 말없이 이어지는 스님들의 행선(行禪)을 지켜보며 도심에서 잊고 지냈던 내면의 고요를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대성계곡의 맑은 물줄기에서 시작해 칠불사의 아자방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단순한 탐방로가 아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명상의 통로다. 최치원이 귀를 씻었던 물소리는 여전히 계곡을 울리고, 일곱 왕자가 깨달음을 얻었던 고요는 칠불사 경내에 가득하다. 역사와 전설, 그리고 수행의 향기가 한데 어우러진 지리산의 이 길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춰 서서 삶의 근원적인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