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스트

문화포스트

감실 치우고 사람 앉혔다, 슈미트 신부의 혁신

 경북 칠곡의 왜관수도원 내 자리한 문화영성센터는 건축가 승효상의 철학이 집약된 '경계 위의 집'으로 불린다. 수도원 안쪽에서 바라본 건물의 첫인상은 노출 콘크리트의 덤덤함과 절제미가 강조되어 얼핏 평범한 오피스텔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이는 세상과의 단절과 연결을 동시에 꾀하는 건축가의 의도된 설계다. 건물 뒤편을 가로지르는 긴 콘크리트 벽은 외부 세계와의 경계를 긋는 듯하지만, 그 벽 사이로 낸 좁고 긴 틈은 빛과 풍경을 안으로 끌어들이며 완전히 닫히지 않은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내부 공간은 수도자의 청빈한 삶을 닮아 극도로 단순하다. 63개의 객실은 침대와 옷장, 성경을 놓을 책상만이 놓여 있어 투숙객들이 온전히 자신과 마주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경당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은 감실 안쪽의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와 포도주 빛의 신비로운 색감을 만들어낸다. 이는 인위적인 조명이 아닌 자연의 빛이 건축적 장치와 만나 빚어낸 경이로운 순간이다. 승효상은 수도원의 장소성을 '세상의 경계 밖'에서 찾으며 이곳을 사색과 기도의 공간으로 완성했다.

 


이곳에는 건축물만큼이나 흥미로운 사연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회의실 벽면을 가득 채운 수백 자루의 망치는 베네딕도회의 핵심 가치인 '기도하고 일하라'는 정신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4층 옥외 공간인 하늘 성당의 첨탑 안쪽에서는 작은 창을 통과한 빛줄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데, 수도자들은 이를 '베네딕도의 별'이라 부르며 신성시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건축이 단순한 구조물을 넘어 종교적 신념과 인간의 노동 가치를 담아내는 그릇임을 증명한다.

 

문화영성센터의 탄생 배경에는 건축가 승효상과 태창철강 유재성 회장의 깊은 우정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대구 군위의 사유원에 지어질 예정이었던 호텔 설계안이 자금 문제로 미뤄지던 중, 피정의 집이 절실했던 왜관수도원에 그 밑그림이 기증된 것이다. 유 회장은 사비를 털어 건축비를 지원했고, 수도원은 이에 화답해 유 회장의 장인이자 청빈한 삶을 살았던 김익진을 기리는 홀을 마련했다. 건축을 매개로 맺어진 이들의 인연은 공간에 따뜻한 인문학적 온기를 더한다.

 


칠곡의 건축 지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인물은 독일인 알빈 슈미트 신부다. 그는 1966년 왜관성당을 지으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건축으로 번역해냈다. 슈미트 신부는 성당의 중심이었던 감실을 옆으로 물리고 제대를 신자 쪽으로 끌어당겨 사제와 회중 사이의 벽을 허물었다. 이는 교회의 권위보다 사람을 중심에 두려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그는 생전 180여 채의 건축물을 남기며 담장을 없애고 마당을 이웃에게 내어주는 등 나눔의 건축을 실천했다.

 

결국 칠곡의 건축물들을 관통하는 핵심 질료는 짓는 이들의 '마음'이다. 재일교포 건축가의 딸 유이화부터 푸른 눈의 신부 슈미트, 그리고 경계 밖의 관점을 유지하는 승효상까지, 이들은 모두 경계의 땅 칠곡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치유와 화해의 공간을 빚어냈다. 전쟁의 비극이 서린 낙동강 방어선의 땅은 이제 이들이 남긴 건축적 유산을 통해 사색과 평화의 땅으로 다시 읽히고 있다. 좋은 건축은 건물의 외관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인간에 대한 예우와 배려에서 시작됨을 칠곡의 집들은 웅변하고 있다.

 

성수동 넘어 건대까지, 팝업 성지 지도 바뀐다

어 방문이나 특정 지역의 맛집을 찾아 떠나는 '빵지순례', 개성을 드러내는 '꾸미기' 열풍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강력한 상권을 형성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서울의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대전, 김천, 양양 등 전국으로 확산하며 침체된 지역 경제를 살리는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중이다.서울의 경우 성수동이 있는 성동구가 경험 마케팅의 절대적인 중심지로 군림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서울 전체에서 열린 팝업스토어 4건 중 1건이 성동구에 집중될 정도로 그 열기가 뜨겁다. 특히 성수동의 핵심 상권인 연무장길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팝업 열풍은 서울숲과 뚝섬을 넘어 동쪽인 건대입구까지 확장되는 양상이다. 이는 브랜드들이 단순히 제품을 노출하는 것을 넘어, 소비자에게 얼마나 차별화된 공간 경험을 선사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는 점을 시사한다.실제로 경험과 소비가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경제적 시너지는 수치로도 입증된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의 분석에 따르면 성수동 상권의 단위 면적당 매출은 전통적인 강자인 강남을 압도하고 있다. 패션 업종의 경우 성수의 평당 매출이 강남보다 3.8배나 높았으며,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역시 성수가 강남을 크게 앞질렀다. 이는 소비자들이 단순히 접근성이 좋은 곳보다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즐길 거리가 풍부한 곳에서 지갑을 더 기꺼이 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지역 상권 역시 고유의 콘텐츠를 무기로 외지인을 불러모으고 있다. 대전은 성심당이라는 강력한 IP를 활용해 전국적인 '빵지순례'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통계에 따르면 대전의 외지인 방문객과 관광 소비 증가율은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돌고 있으며, 특히 성심당 본점이 위치한 중구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김천 또한 지역 특색을 살린 김밥축제를 통해 인구수를 뛰어넘는 인파를 끌어모으며 문화관광축제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는 등 콘텐츠의 힘을 증명해냈다.강원 양양과 충남 예산 역시 경험 소비의 수혜를 톡톡히 입은 지역들이다. 서핑의 성지로 불리는 양양은 성수기 체류 인구가 등록 인구의 27배에 달하며 강원도 전체 카드 사용액의 절반 이상을 견인하는 기염을 토했다. 예산시장 또한 백종원 대표의 더본코리아와 협업한 대대적인 정비 이후 2030 세대의 필수 방문 코스로 급부상했다. 재개장 이후 누적 방문객 1000만 명을 돌파하며 죽어가던 전통시장이 어떻게 경험의 성지로 부활할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주었다.전문가들은 앞으로 소비자 경험 설계 능력이 브랜드와 지역의 생존을 결정짓는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소비자들의 관심사가 빠르게 변하고 유사한 경험에는 쉽게 실증을 느끼는 특성상, 상품이나 지역 고유의 매력을 체감할 수 있는 정교한 기획이 필수적이다. 결국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단 하나뿐인 경험'을 제공하는 곳만이 치열한 상권 경쟁에서 살아남아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