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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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도 반한 그 맛! 공주 '사백년 인절미 축제', 떡메치러 가자!

 400년 전, 임금님도 반했다는 특별한 떡! 그 쫄깃하고 고소한 맛의 주인공, 인절미를 테마로 한 축제가 충남 공주에서 펼쳐진다. 공주시는 오는 3월 15일(금)부터 16일(토)까지 이틀간 산성시장 문화공원에서 '사백년 인절미 축제'를 개최한다고 6일 밝혔다.

 

이번 축제는 조선 인조 임금과 얽힌 인절미의 유래를 널리 알리고, '떡의 도시' 공주의 다채로운 매력을 뽐내는 자리다. 축제장을 찾은 방문객들은 직접 떡메를 치며 인절미를 만들고, 갓 만든 떡을 맛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사백년 인절미 축제'는 단순한 먹거리 축제를 넘어,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풍성한 체험 프로그램을 자랑한다.

 

축제의 백미는 단연 인절미 떡메치기 체험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해 떡메를 내리치며 쫄깃한 인절미를 만드는 재미에 푹 빠질 수 있다. 직접 만든 인절미를 맛보는 시식회도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흥겨운 문화공연도 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신나는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공연은 방문객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할 것이다. 또한, 따끈한 가래떡을 구워 먹는 체험과 시민들이 끼를 발산하는 노래자랑도 마련돼 즐거움을 더한다.

 


축제 기간 내내 운영되는 상설 프로그램도 알차다.

 

공주 지역의 특색 있는 떡과 다양한 특산품을 판매하는 부스들이 방문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눈으로 보고, 맛보고, 구매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통 놀이 체험 공간도 마련된다. 윷놀이, 투호 등 잊혀져 가는 전통 놀이를 즐기며 온 가족이 함께 웃음꽃을 피울 수 있다.

 

공주 인절미는 특별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624년,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 공산성으로 피신한 인조 임금에게 임씨 성을 가진 백성이 콩고물을 묻힌 떡을 진상했는데, 그 맛이 뛰어나 임금이 감탄하며 떡 이름을 물었다고 한다. 백성이 "이름은 모르고 임씨가 만든 떡"이라고 답하자, 임금이 "임씨가 만든 절미(絶味, 맛이 뛰어난 음식)"라고 칭찬하며 '임절미'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후 '임절미'가 '인절미'로 변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최원철 공주시장은 "이번 축제를 통해 인절미의 유래를 간직한 떡의 도시, 공주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싶다"며, "많은 분들이 오셔서 400년 전 통의 인절미도 맛보고, 즐거운 추억도 많이 만들어 가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日軍이 총 쏘자 ‘피땀’ 흘렸다는 비석…방치된 이순신 최후의 보루에 가보니

던 이유는 단 하나, 수백 척의 왜군에 맞서 싸워야 할 조선 수군의 전력이 고작 13척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라도 사람을 모조리 죽여 씨를 말리라"는 잔혹한 명령 아래 전라도 전역은 초토화되고 있었고, 이순신은 함대를 보존하고 재건할 안전한 근거지가 절실했다. 법성포, 고군산도를 전전하고 우수영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폐허가 된 뒤였다. 시야 확보가 어렵고 육지와 멀어 전략적으로 부적합했던 안편도를 거쳐 마침내 도달한 곳이 바로 고하도였다. 이곳은 영산강 하구에 위치해 군량 조달이 용이하고, 북서풍을 막아주는 천혜의 지형에 배를 만들 소나무까지 풍부해 수군 재건을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고하도에 닻을 내린 이순신은 곧바로 기적과도 같은 재건 작업에 착수했다. 도착하자마자 집과 군량 창고를 짓고, 길이 1km, 높이 2m의 석성을 쌓아 방어 태세를 갖췄다. 가장 놀라운 것은 군량미 확보와 함대 증강이었다. 피란민들의 배에 실린 곡식을 군량미로 바꾸는 ‘해로통행첩’ 제도를 시행해 단 열흘 만에 1만 석의 군량미를 비축했다. 동시에 백성들을 모아 구리와 쇠로 대포를 만들고, 섬의 풍부한 소나무를 베어 40여 척의 전선을 건조했다. 그 결과 13척에 불과했던 함대는 53척으로 늘어났고, 흩어졌던 장수와 병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1천 명이던 병력은 2천 명으로 불어났다. 원균의 칠천량 패전으로 궤멸 직전까지 갔던 조선 수군이 불과 100여 일 만에 다시금 막강한 위용을 갖추게 된 것이다.오늘날 고하도는 이순신의 처절했던 재건의 역사 위에 화려한 현대적 관광 시설을 덧입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유달산 정상을 넘어서면 목포 앞바다와 해안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섬에 내리면 13척의 판옥선을 격자 모양으로 쌓아 올린 독특한 형태의 전망대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용머리 해안을 따라서는 1818m 길이의 아름다운 해상데크가 쪽빛 바다 위로 이어진다. 가을이면 해안 절벽을 수놓는 노란 들국화의 군락은 탄성을 자아낸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사진을 찍고 둘레길을 걸으며 여유를 만끽하지만, 이곳이 패배의 벼랑 끝에서 조선의 운명을 다시 일으켜 세운 역사의 심장부였음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이처럼 고하도는 아름다운 순례길 이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이지만, 그 가치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이순신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722년 세워진 기념비와 모충각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당시 수군의 심장이었던 삼도수군통제영은 복원되지 못한 채 그 터만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총을 쏘자 비석이 몇 달간 땀을 흘렸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민족의 한이 서린 곳이지만, 대부분의 방문객은 둘레길만 둘러볼 뿐 이곳을 스쳐 지나간다. 노량해전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 재기의 땅, 고하도 삼도수군통제영의 조속한 복원을 통해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모든 국민이 찾는 역사의 순례길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