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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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네슘' 먹였더니 뇌 기능이 회복…발달장애 정복되나

 국내 연구진이 특정 유전자 결손이 발달장애를 일으키는 핵심적인 발병 원리를 세계 최초로 규명하고, 나아가 치료의 가능성까지 제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의 정용근 명예교수와 박경린 박사과정생 연구팀은 종양억제후보유전자로 알려진 'TUSC3'의 결손이 어떻게 지적장애로 이어지는지를 분자 수준에서 밝혀낸 연구 결과를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했다고 밝혔다. 이는 그동안 원인 불명으로 여겨졌던 일부 발달장애의 베일을 벗기고, 새로운 치료 전략 개발의 청신호를 켠 중대한 성과로 평가된다.

 

연구팀은 TUSC3 유전자의 기능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전부터 지적장애 환자들에게서 해당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반복적으로 보고되었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연구팀은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TUSC3 유전자가 결손된 동물 모델을 제작하여 그 영향을 면밀히 관찰했다. 그 결과, TUSC3 유전자의 부재가 신경세포 내 소기관인 소포체(ER)의 마그네슘 농도를 급격히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포의 '단백질 생산 및 관리 공장'인 소포체에 마그네슘이 부족해지자, 공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소포체 스트레스' 상태가 유발되었고, 이는 최종적으로 뇌 기능의 핵심인 시냅스 단백질의 감소로 이어져 인지 기능을 저하 시켰던 것이다.

 


더 나아가 연구팀은 이 문제에 대한 놀라운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했다. 원인이 '소포체 내 마그네슘 결핍'이라면, 마그네슘을 보충해주면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 것이다. 연구팀은 TUSC3 유전자가 결손된 동물 모델에게 마그네슘을 직접 보충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마그네슘 보충을 통해 소포체 내 마그네슘 농도가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자, 극심했던 소포체 스트레스가 눈에 띄게 완화되었다. 이에 따라 감소했던 시냅스 기능까지 정상화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손상되었던 인지 능력이 현저히 회복되는 것을 입증했다. 단순한 영양소 보충이 유전자 결손으로 인한 심각한 문제를 되돌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극적인 순간이었다.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의의는 '소포체 마그네슘 결핍 → 소포체 스트레스 → 시냅스 기능 저하'로 이어지는 새로운 발달장애 발병의 핵심 축을 명확하게 제시했다는 점에 있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현상을 관찰한 것을 넘어, 복잡한 생명 현상의 인과관계를 명쾌하게 풀어낸 것이다. 특히, 마그네슘이라는 비교적 안전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물질을 통해 치료 가능성을 동물 모델에서 확인했다는 점은 향후 발달장애 치료제 개발 연구에 매우 중요한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전자 결함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는 어렵더라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연쇄적인 문제를 중간에서 차단하는 새로운 방식의 치료 전략에 대한 희망을 열어주었다.

 

日軍이 총 쏘자 ‘피땀’ 흘렸다는 비석…방치된 이순신 최후의 보루에 가보니

던 이유는 단 하나, 수백 척의 왜군에 맞서 싸워야 할 조선 수군의 전력이 고작 13척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라도 사람을 모조리 죽여 씨를 말리라"는 잔혹한 명령 아래 전라도 전역은 초토화되고 있었고, 이순신은 함대를 보존하고 재건할 안전한 근거지가 절실했다. 법성포, 고군산도를 전전하고 우수영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폐허가 된 뒤였다. 시야 확보가 어렵고 육지와 멀어 전략적으로 부적합했던 안편도를 거쳐 마침내 도달한 곳이 바로 고하도였다. 이곳은 영산강 하구에 위치해 군량 조달이 용이하고, 북서풍을 막아주는 천혜의 지형에 배를 만들 소나무까지 풍부해 수군 재건을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고하도에 닻을 내린 이순신은 곧바로 기적과도 같은 재건 작업에 착수했다. 도착하자마자 집과 군량 창고를 짓고, 길이 1km, 높이 2m의 석성을 쌓아 방어 태세를 갖췄다. 가장 놀라운 것은 군량미 확보와 함대 증강이었다. 피란민들의 배에 실린 곡식을 군량미로 바꾸는 ‘해로통행첩’ 제도를 시행해 단 열흘 만에 1만 석의 군량미를 비축했다. 동시에 백성들을 모아 구리와 쇠로 대포를 만들고, 섬의 풍부한 소나무를 베어 40여 척의 전선을 건조했다. 그 결과 13척에 불과했던 함대는 53척으로 늘어났고, 흩어졌던 장수와 병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1천 명이던 병력은 2천 명으로 불어났다. 원균의 칠천량 패전으로 궤멸 직전까지 갔던 조선 수군이 불과 100여 일 만에 다시금 막강한 위용을 갖추게 된 것이다.오늘날 고하도는 이순신의 처절했던 재건의 역사 위에 화려한 현대적 관광 시설을 덧입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유달산 정상을 넘어서면 목포 앞바다와 해안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섬에 내리면 13척의 판옥선을 격자 모양으로 쌓아 올린 독특한 형태의 전망대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용머리 해안을 따라서는 1818m 길이의 아름다운 해상데크가 쪽빛 바다 위로 이어진다. 가을이면 해안 절벽을 수놓는 노란 들국화의 군락은 탄성을 자아낸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사진을 찍고 둘레길을 걸으며 여유를 만끽하지만, 이곳이 패배의 벼랑 끝에서 조선의 운명을 다시 일으켜 세운 역사의 심장부였음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이처럼 고하도는 아름다운 순례길 이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이지만, 그 가치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이순신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722년 세워진 기념비와 모충각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당시 수군의 심장이었던 삼도수군통제영은 복원되지 못한 채 그 터만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총을 쏘자 비석이 몇 달간 땀을 흘렸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민족의 한이 서린 곳이지만, 대부분의 방문객은 둘레길만 둘러볼 뿐 이곳을 스쳐 지나간다. 노량해전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 재기의 땅, 고하도 삼도수군통제영의 조속한 복원을 통해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모든 국민이 찾는 역사의 순례길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